1927년 ‘재즈싱어’의 개봉과 함께 본격적으로 영화 속에 도입되기 시작한 소리는
시각에 한정돼있던 영화를 종합예술로 발전시켰습니다.
소리가 제거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청각은 시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분위기와 상황을 담당합니다. 항상 소리와 더불어 살아가지만,
소리의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색다른 경험으로 만들어 냅니다.
소리로 듣는 세상
청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먼저 발달한다고 합니다. 또한 소리는 가장 보편적인 의사전달 수단입니다.
우리는 소리를 통해 정보나 감정을 전달하고, 소리의 반향을 통해 공간이나 환경을 인지합니다.
소리를 통한 표현은 음악이 그러하듯 감동의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소비자 체험의 측면에서
소리의 기술을 활용한다면 항상 듣던 익숙한 감각에 새로운 효용을 더할 수 있습니다.
우선 소리를 다르게 듣는 방법에 대해 살펴봅시다. 소리,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진동의 파장인
음파는 보통 공기를 통해 우리의 청각 기관을 거친 뒤 전기 신호로 변환돼 뇌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소리는 사실 공기뿐만 아니라 물이나 금속, 또는 인체의 골조직 등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음파를 공기 중에 퍼져나가게 두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강하게 집중시키는
지향성 기술은 이어폰 없이도 혼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소리의 본질적 속성을 살펴보자면,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서 발생하는 음파이며,
사람들은 이것을 정보 전달의 수단이나 감성적인 매개로 이용합니다.
자연 현상이나 가전제품 등에서 들을 수 있는 백색 소음은 모든 영역대의 주파수를 포함하고 있어서
다른 소음을 중화시키고 심신에 안정을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소리의 높낮이를 이용한다면,
보통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음역으로 특정 신호를 송출해 앱이나 디바이스를 작동시키거나,
이 음역대를 들을 수 있는 어린이나 동물들이 반응하게끔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소리의 기술은 고객과의 경험과 소통이 중시되는 마케팅 활동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리의 울림을 통해 공간의 크기를 짐작할 수도 있고, 소리가 조성하는 분위기를 통해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청각은 듣는 이가 선별해 수용하기 어려운 다소 수동적인 감각이며,
이로 인해 소리는 늘 우리 주변에 공존하며 기억과 감정의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소리를 통해 전달된 경험은 상상력과 연상 이미지를 통해 총체적인 감각으로 확장되며 마케팅 활동을 통해
소비자의 기억에 남는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소리를 다채롭게 전달하고, 그 근원적인 활용을 고민하며,
소리를 통해 경험을 만들어 내는 다양한 시도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듣는 방법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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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홀랜드 오퍼스’에서는 주인공이 청각 장애인인 아들을 위해 소리가 아닌 빛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 장면이 등장합니다. 듣는 방식을 다르게 만드는 기술은
이처럼 소리의 형태를 다른 모습으로 변환시키고, 일상 속에서 들리는 경험을 새롭게 만듭니다.
소리를 다르게 전한다면 불쾌감을 유발하는 소음까지도 유용하게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에코 노이즈(Eco-Noise)는 다섯 명의 디자이너들이 고안한 콘셉트 제품입니다.
건설 현장에 방음벽이 설치돼 있더라도 보행자들은 심리적인 요인으로 공사장의 소음을
더욱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코 노이즈라는 이 방음벽은 소음의 파장을 에너지로 활용하고
벽을 화면으로 삼아, 빛의 패턴을 시각화해 아름답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불쾌감을 해소시킵니다.
소리를 변형하는 기술을 환경 개선을 위한 솔루션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입니다.
▲ 공사장 소음을 빛으로 바꾸는 특별한 방음벽 아이디어, 에코 노이즈
상용되고 있는 기술인 지향성 스피커는 이제 얇은 포스터 형태의 제품으로 등장했습니다.
벽에 붙은 포스터 앞을 지날 때 나에게만 들리는 메시지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야마하의 사운드 사이니지(Sound Signage)는 1.5mm의 두께로 휘거나 구부릴 수 있는
보드 형태의 지향성 스피커로서, 인쇄 매체로 병행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합니다.
시각 매체의 전유물이었던 포스터와의 인터랙션을 통해 소비자는 예상치 못한 소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의외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포스터 형태의 지향성 스피커, 사운드 사이니지
소리의 본질을 고민하다
1970년대 미국의 사회심리학 보고서에 의하면 사람들은 말의 내용보다 목소리 톤과 억양을 통해
주요 판단을 내린다고 합니다. 소리는 언어적 역할 외에도 그 자체로 비언어적 정보와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이며, 소리의 본질을 고민한다면 이를 통한 새로운 활용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적당한 소음이 있는 카페에서 공부나 업무를 할 때 도서관이나 사무실보다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 점에 착안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커피티비티(Coffitivity)는 카페에서 들을 수 있는
웅성거리는 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등을 들려줍니다.
▲ 카페에서 들을 수 있는 일상의 소음을 들려주는 앱, 커피티비티
이런 일상 소음은 규칙적인 파장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거슬리는 소음을 감소시키며,
집중력을 높이거나 안정감을 주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빗소리가 주는 아늑함이나 바람 소리가 주는
시원함처럼 소리를 이용해 인간의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조절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감각 기관처럼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인 사운들리(sound.ly)는 TV나 매장의 스피커를 통해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파 신호를 스마트폰에 전달하는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 비가청역대의 소리 신호를 활용한 마케팅 서비스, 사운들리
TV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이 들고 있는 가방이나 구두에 대한 구매 정보가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고,
매장에 들어서기만 해도 자동으로 할인 상품의 정보가 전달됩니다. 음파의 청역대를 이용하면
소비자의 일상적인 행동을 방해하지 않는 상태에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구매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지각할 수 있는 감각만이 마케팅 수단이 된다는 선입견을 과감히 깨어 버린 솔루션입니다.
소리가 경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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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이나 촉각 등 다른 감각과 함께 작용하는 청각의 특성은 다른 감각을 내포한 총체적 경험으로
확장되기 용이합니다. 떨어지는 소리, 깨지는 소리 등의 효과음을 들으면 즉시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으며, 영화음악을 들으면 당시 봤던 특정 장면이 떠오릅니다.
소리를 이용한다면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F1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Ayrton Senna)는 1989년 일본 F1 그랑프리에서 전 세계 최단 기록을 세우며
역사에 남을 만한 경기를 남겼습니다. 세나의 차량을 제작했던 혼다에서는 자신들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당시 레이싱 기록을 이용해 이 경기를 부활시켰습니다.
▲ 자동차 배기음과 엔진 소리로 전설적인 경기를 재현한 사운드 오브 혼다
윙윙거리는 엔진의 굉음은 세나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빛의 움직임에 맞춰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관중들은 실제 차량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설 속 경기의 열기와 생생한 레이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브랜드가 줄 수 있는 가장 감성적인 영역은 배기음, 엔진음과 같은 소리에 있습니다.
혼다는 자동차 메이커로서 자신들이 지닌 기술력을 소리를 이용한 특별한 경험으로 전달하며 감동을
재현했습니다.
오르골 소리는 감성을 자극하고 추억을 되살립니다. ‘듣는 책, 보는 음악’을 모토로 만화와 음악의
융합을 시도하는 일본의 미에루 레코드(Mieru Record)에서는 오르골을 이용해 만화를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오르골은 종이 위에 음정 정보를 구멍으로 뚫어 표시한
타공 악보를 읽어 동작하는데, 미에루 레코드에서는 만화가 그려진 긴 종이를 타공 악보로 이용했습니다.
▲ 오르골 소리로 경험되는 미에루 레코드의 멀티미디어 경험
손잡이를 돌리면 종이 위에 그려진 만화가 서서히 움직이며 애니메이션 효과를 내고 그 내용과 어울리는
음악이 아름다운 음색으로 들려옵니다. 18세기부터 소리를 전했던 오르골 장치, 그리고 아련하고 애틋한
오르골 소리가 사용자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며 재미있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경험을 선사합니다.
낯설게 듣기
듣는다는 것은 평범하게 느껴지는 보편적인 행위입니다.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소리에 의존해 세상을 읽고
소통합니다. 이렇게 익숙한 감각인 만큼 소리를 단순 소통을 넘어선 목적이나 방법으로 활용한다면
소비자의 마인드에 남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익숙한 소리의 ‘낯설게 듣기’라는 시도는
일상에서 언제든지 시도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의 단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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