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6. 2
글 김현경 한양사이버대학교 마케팅학과 교수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더 멋진 브랜드나 더 실속 있는 제품이 나오면 언제든지 ‘갈아타는’ 게 요즘 소비자다. 특히 저성장기에는 이런 경향이 뚜렷해진다. 때로는 기업의 실책으로 소비자에게 신뢰를 잃기도 한다. 기업과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달달한 커플’이 될 수 있을까. 소비자의 신뢰를 구축하는 마케팅, 신뢰를 복구하는 마케팅 전략에 대해 살펴본다.
소비자 경험을 통해 전달되는 진실과 신뢰
▲ 요즘 소비자가 기업에 원하는 신뢰는 ‘Credibility’가 아니라 ‘Truth’이다. 미로 같은 소비자의 마음에서 새로운 ‘MOT(Moment of Truth)’를 찾아야 한다. ⓒ셔터스톡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는 가지 않더라도 직장인 대부분이 매일 반드시 선택하고 구매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점심식사! 메뉴, 가격, 청결 등 다양한 요소를 고민한 후 동료들과 식당 문에 들어서게 된다. 때로는 선택에 만족하면서, 또 때로는 반신반의하면서…. 그들을 이끄는 것은 ‘유명한 맛집이니까’, ‘항상 맛이나 가격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까’, ‘사무실에서 가까우니까’ 등의 생각이다.
그러던 중 생각의 틀을 바꿔버린 한 TV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에 등장했다. 우리가 자주 찾던 식당이 믿을 만한 재료로 제대로 음식을 만드는지 낱낱이 파헤칠 뿐 아니라,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착한 식당도 찾아주고, 좋은 먹을거리의 기준도 제시했다.
그동안 맛집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은 많았다. 예전에는 낮선 곳에서 식당을 찾을 때 ‘TV에 나온 집’, 이런 현수막이 소비자를 유인하는 매력적인 장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불신’이 점차 커져갔다. 결국 ‘TV에 안 나온 집’이라는 웃지 못할 현수막이 차별화를 위한 전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소비자는 무엇을 보고 선택을 해야 할까? 기업이 주도하는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이나 브랜드를 알리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그 효과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이나 브랜드는 결국 소비자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에 대한 평가와 정보는 오늘날과 같이 소비자-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뉴미디어 시대에는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접점을 ‘진실의 순간(MOT, Moment of Truth)’이라고 해왔다. 진실이 전달되고 그 진실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이미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의 순간은 그런 정보들이 만들어지는 순간, 즉 소비자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하는 바로 그 순간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소비자들 사이에 공유되는 순간도 포함된다.
신뢰의 또 다른 측면, 불만족에 대한 복구
▲ 국내 자동차 업계가 해외 기업들에게 내수 시장을 내주고 있는 데는 소비자의 신뢰도 하락이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셔터스톡
소비자 신뢰만큼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 바로 소비자 불신이다. 이둘은 동전의 이면으로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이지만, 기업의 마케팅 관리자나 경영자라면 각각을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수 시장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며 해외 시장 진출의 발판을 굳건히 해왔던 국내 자동차 업계는 최근 들어 이 소중한 내수 시장을 해외 자동차 기업들에게 급속도로 빼앗기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소비자 신뢰도의 하락이라고 할 수 있다. 내수용보다 수출용이 더 튼튼하고 품질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격은 저렴하다는 평가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진실이 돼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불신을 지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번 훼손된 신뢰를 복구하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와 소비자 신뢰’ 하면 최근 문제가 됐던 독일 유명 자동차의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독일 자동차는 믿을 수 있는 기능과 우수한 품질의 자동차로 전 세계 소비자들의 강력한 신뢰를 받아왔다. 우리 내수 시장에서 국내 자동차가 고전하게 된 데에도 이처럼 독일 자동차의 품질에 대한 강력한 신뢰가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기능뿐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우직하고 진실한 독일인의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자동차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클린 디젤’이라는 모토 아래 디젤자동차가 배기 오염의 주범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면서도, 우수한 기능을 두루 갖춘 독일 유명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믿음은 순식간에 매출을 상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런 독일 유명 자동차가 배출가스 조작 논란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게 됐다. 신뢰가 매우 컸기에 그만큼 ‘조작’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더욱 컸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적절하지 못했다. 결함 원인에 대해서는 한 문장, 그리고 리콜 계획에 대해서는 단 두 줄이라는 무성의한 대응을 보였다. 미국에서는 문제 모델에 대해 즉각 판매를 중단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폭탄 세일로 문제 해결은커녕 재고 처리까지 했다. 결국 소비자들의 불만은 불신을 넘어 분노로 이어졌다.
신뢰는 브랜드에 앞서 품질로 승부하는 것
▲ ‘가성비’를 내세운 이마트 노브랜드 제품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emart.ssg.com
정보의 홍수 속에서 모든 것을 비교하기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게 현실이다. 이때 ‘브랜드’는 소비자 선택에 경제적 편리함과 효용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단순히 멋진 이름과 매력적인 로고, 심볼이 소위 잘 나가는 브랜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시간으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다양하고 진솔한 경험을 소비자들이 서로 나눌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우수한 품질에 기반하지 않은 브랜드는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다.
여기에 오늘날과 같이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품질을 고려하지 않고 선택을 하거나 다른 소비자들의 경험을 확인하지 않고 구매를 결정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이마트의 PB 제품(Private Brand Product)들이 아예 ‘노브랜드’라는 브랜드 네임으로 출시되고 있다. 우수한 품질을 기본으로 하되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포장을 간소화하면서 이처럼 브랜드 같지 않은 브랜드 네임을 식품, 생활용품, 전자제품 등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제품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매출도 껑충 뛰었다.
그동안 많은 마케팅 관리자나 브랜드 관리자들이 소비자 신뢰는 브랜드를 통해 구축된다는 측면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핵심에 품질이 있다는 것을 놓치는 순간, 브랜드의 부수적인 것들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경기 같은 환경의 변화나 SNS가 활성화돼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활발하게 나누고 공유하는 환경에서는 힘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신뢰는 브랜드를 통해 구축되지만, 그 브랜드 안에 품질이 반드시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품질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며 그들이 비용을 지불하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품질이다. 기본적인 기능이나 속성 측면에서 우수한, 최소한 기준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 만족은 기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품질이 증명될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두 번째, 소비자들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소비자들이 고려 대상 제품들을 모두 경험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기업이 얘기하는 경험에 대한 기대치는 신뢰하기 어렵지만, 다른 소비자들의 솔직한 경험은 간접적이지만 쉽게 믿을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서로 그들의 경험을 진솔하고 신속하게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면 좋다.
세번째, 만족의 반대편인 불만족에 대한 준비와 대응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비자 불만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불만족의 상황을 잘 극복하기 위한 복구(Recovery) 노력은 오히려 기업에게 기회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은 이를 통해 기업의 ‘진정성’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기업으로부터 원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신용(Credibility)을 넘어 신뢰(Truth)를 의미한다. 전자가 수치 등의 정확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여기에 정직함과 같은 심리적 믿음이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불만족이 없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불만족의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신뢰의 회복을 넘어 더욱 강한 신뢰를 구축하는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기업과 소비자, 제품이나 브랜드와 소비자는 신뢰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관계를 구축해간다. 소비자를 ‘내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진정성을 갖고 대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때로는 그 사람을 실망시키더라도 솔직하게 사과하고 진심을 보여준다. 기업이 이런 태도로 소비자를 대하는 것이야말로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명확한 전략이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 결국 마음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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