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2. 10:00

 

그때 그 놀이와 지금 이 놀이

예전에 아이들은 주로 골목길이나 동네 공터에서 놀았다. 놀이에도 남녀의 구분이 있어, 여자아이들은 주로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했고, 남자아이들은 사방치기나 자치기를 하곤 했다. 남녀 ‘혼성조’가 이뤄지면 술래잡기나 말뚝박기를 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놀이는 대부분 여럿이 모여야 가능했다. 오징어놀이나 딱지치기처럼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수 있는 놀이가 있었지만, 혼자서 대체 무슨 재미란 말인가. 아이들의 놀이는 대개 장르를 넘나들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하다가 급기야 한 옥타브 높아진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야 비로소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골목에서, 공터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점차 사라졌다. 사라진 아이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물론 피리 부는 아저씨가 데려가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학원 순례를 하든지 아니면 집에서 혼자 컴퓨터 게임을 하며 놀았다. 이쯤에서 어른들의 걱정이 시작됐다. “자고로 애들은 여럿이 함께 어울려 놀아야 하는 법인데….”

아마 어른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이들이 혼자서 놀지 않는다는 것을. 길드도 만들고, 클랜도 만들고, 두레도 만들고, 혈맹도 만들면서 여럿이 함께 놀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혼자인 듯, 혼자 아닌, 혼자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자고로 애들은 혼자서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로 보여요?

근대 이전에는 혈족으로 이뤄진 집성촌이 많았다. 그래서 길 가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대부분 친척이거나 친지였다. 그런데 인사를 안 하거나 딴짓을 한다면? 그러면 “어느 집 아무개가 버릇이 없더라” 하는 말이 금세 퍼져 크게 혼날 각오를 해야 했다. 자연히 말썽을 부리기도 힘들었고, 예의범절을 갖출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뉘 집 아이가 잘못하면 가족이 아닌 사람도 얼마든지 야단칠 수 있었다. 혈족 공동체에서는 그게 가능했고 또 당연히 그래야 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남의 자식도 내 자식이고, 내 자식도 내 자식인데. 그 시절에는 ‘나’보다 ‘우리’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보다 ‘나’가 더 먼저다. 사람들은 갈수록, 나날이 더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걸 못 견뎌 한다. 과거에 ‘나’는 ‘우리’의 부분집합이었지만, 지금 ‘나’는 집합을 벗어난 독립적 원소이다.

이제 사람들은 ‘우리’라는 피곤함에서 벗어나 가뿐히, 부담 없이 ‘나’ 혼자 있기를 원한다. 일가친척이 다 모인 명절날,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아이에게 어른들이 말한다. “혼자 있지 말고 나와서 좀 어울려라.” 아마 어른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지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의 스마트폰에서 연신 SNS 알림음이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혼자 있지만 기실 혼자가 아닌 이 묘한 상황은 대체 뭘까.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삶을 추구한다. ‘혼밥’, ‘혼술’, ‘혼영’, ‘혼행’ 등은 점점 개인화되고 파편화돼 가는 사회 변화를 대변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없을까? 그렇지 않다. 전통적 공동체가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취향 공동체가 그 단적인 예다. 이제 수많은 ‘나’들은 취향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공동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모였다 흩어지는 플래시 몹도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이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사람과 사람만 ‘가족’이 되라는 법도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싱글족이 늘면서 ‘펫밀리(Petmily)’라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탄생하기도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자웅동체였는데 신이 둘로 갈라놓았다고 한다.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일견 모순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인간이 태생적으로 결핍된 존재라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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