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7
글 이준영(상명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트렌드코리아 2017』 공저자)
저성장 시대에는 가성비가 중요하다. 그러나 싸다고 해서 무조건 환영받는 건 아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해서는 소비자의 눈길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게 프리미엄 전략이다. 특히 ‘B+ 프리미엄’은 고급스러운 A등급이 아닌 대중적이고 평범한 B등급에 새롭고 특별한 가치를 더하는 전략으로, 소비자의 니즈에 적확히 대응하는 한편 소비자를 충분히 납득시키는 게 핵심이다.
가성비 시대, ‘가격’보다 더 중요한 건 ‘가치’
저성장기가 깊어지면서 가성비가 핵심 소비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가성비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성능/가격’이다. 가성비를 높이는 방법으로 분모인 가격을 낮추는 방법도 있지만, 분자인 성능을 높이는 방안도 있다. 소비자들은 무조건 저가격이 아닌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따라서 가성비의 시대가 가속화될수록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프리미엄의 확보가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진다.
프리미엄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현상은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고관여 제품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대중 제품이나 식품 등 저관여 제품군에도 프리미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일반 대중 제품의 카테고리에서도 프리미엄의 가치가 핵심으로 자리 잡는 현상을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는 ‘B+ 프리미엄’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작은 사치, 스몰 럭셔리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적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로 B+ 프리미엄이다.
▲ 모나미 153 플라워 Ⓒmonami.co.kr
평범한 대중품에 프리미엄의 가치를 입힌 B+ 프리미엄은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모나미의 국민 볼펜으로 불리는 ‘153 볼펜’이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2만 원짜리 프리미엄 한정판 ‘153 플라워 볼펜’을 내놓자 바로 품절 사태가 벌어지며 중고 가격이 몇 십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거리에서 저렴하게 사 먹던 군것질 음식인 어묵도 삼진어묵, 고래사어묵 등 프리미엄 제품들로 변신하며 백화점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냉동식품에서도 비비고 왕교자 같은 프리미엄 라인, 대중 브랜드 롯데리아에서 프리미엄 재료를 넣어 출시한 ‘AZ버거’ 등이 B+ 프리미엄 제품 사례들이다.
▲ 프리미엄 대중 커피 시장을 창출한 콜드브루 Ⓒ동서식품
딥디크나 조말론 등의 향수 회사들은 섬유향수라는 새로운 프리미엄 제품 카테고리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콜드브루 커피도 원재료가 가진 신선함의 가치를 내세우며 프리미엄 대중 커피 시장을 창출했다. 이런 사례들이 모두 대중 제품 영역에서 프리미엄을 창출하는 B+ 프리미엄 전략이다. 치열한 공급 과잉의 경쟁 시대에는 합리적인 저가격을 넘어서 고객들의 작은 사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제품들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소비 양극화가 만들어 내는 프리미엄 선호 현상
불황기에 이렇게 프리미엄 라인이 역설적으로 급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저성장기에 나타나는 소비의 양극화 현상 때문이다. 예전에는 개인의 소비 함수 내에서 [그래프1]처럼 중간 가격대의 제품을 많이 선택했다. 그러나 저성장기에 소비의 양극화가 두드러지면서 [그래프2]처럼 완전히 저가격 제품을 추구하거나 고가격의 프리미엄 제품군에 대한 수요가 역설적으로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100g당 1원이라도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찾는 반면, 자신이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작은 사치, 스몰 럭셔리 경향이 동시에 나타난다. 가격이 저렴한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와 고가격의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B+ 프리미엄 트렌드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불황기에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역설적으로 늘어난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디자인 가전 브랜드인 스메그(SMEG)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주력 제품인 냉장고와 오븐 판매 실적을 전년보다 약 40% 끌어올릴 정도로 매출 상승세가 매우 높다. 비싼 가격 탓에 ‘가전업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독일 프리미엄 가전 밀레도 지난해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저성장 시대의 소비 양극화 현상이 만들어 내는 프리미엄 선호 현상이 역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프리미엄 선호 현상을 보여 주는 이태리 가전 브랜드 스메그 Ⓒsmeg.co.za
비쌀 만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시켜라
B+ 프리미엄은 럭셔리의 개념과 구별해야 한다. 럭셔리는 유럽적 접근으로서 전통과 해리티지를 강조하며 타인에게 과시하려는 지위 표지로서의 기능이 강한 제품을 가리키는 반면, B+ 프리미엄은 미국이나 일본적 접근으로서 철저히 탁월한 기능과 품질을 강조하며 사용상의 즐거움과 자기 만족 경향이 강한 제품을 가리킨다.
B+ 프리미엄 제품은 고객들에게 실용적 가치를 눈으로 확인하게 하며, 감각적이되 합리적인 디자인으로 승부한다. 여기에 차별화된 경험과 소재의 신선함을 살린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프리미엄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왜 비싼가?”라는 질문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납득 가능한 품질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실체 있는 프리미엄이 B+ 프리미엄이다. 즉 B+ 프리미엄의 기본은 “소비자가 지불한 비용에 대비해서 납득 가능한 대가를 되돌려 주는가?”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B+ 프리미엄은 그동안 견고했던 ‘고급제품 vs 대중제품’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저성장기 소비의 양극화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내고 있다. 장기 저성장기에 소비 구조의 질적 변화가 예고되는 미래에 B+ 프리미엄 트렌드는 불황의 벽에 막히고, 소비 절벽의 늪에 빠진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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