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7. 10:00

명문대 입시나 고시에 합격하면 고향마을 어귀나 입시학원 외벽에 걸리는 플래카드. 예전에는 이처럼 특별한 ‘사건’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희소성이 배제된 평범한 ‘일상’을 자랑삼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소셜미디어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체 왜 사람들은 먹고 입고 노는 모든 일상을 인증샷으로 찍어 공유하려 하는 것일까? 

 

그때 그 시절에도 인증샷이?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사진은 인화지라는 물성을 가진 ‘물건’이었다. 하지만 사진이 데이터로 존재하고 소장되는 지금, 사진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다. 기념 촬영 또한 졸업식과 결혼기념일, 돌잔치만의 절차도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특정되지 않은 시간과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언제 어디서나. 그래서 점심에 먹은 파스타와 퇴근 뒤 찾은 한강공원의 야경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특히 기성 세대와 달리 자기 표현이 익숙한 소셜미디어 세대에게 SNS를 기반으로 하는 인증샷 트렌드는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셀카와 인증샷 트렌드

이런 현상은 일견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결합해 낳은 시대적 산물로 보인다. 하지만 답이 이렇게 간단해도 될까? 그런 분석 이면에는 과연 어떤 속내가 숨어 있을까? 만약 오늘 점심에 당신이 빌 게이츠와 점심을 먹었다면, 굳이 인증샷을 찍어 ‘자랑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뉴스에 등장할 테니까. 우리가 굳이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타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다. 관심을 끌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지지를 원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현대적 나르시시즘의 발현’이라고 해석한다.

인증샷의 원형은 아마도 사진이 없던 시절의 초상화와 정물화일 것이다. 초상화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화가의 자화상 정도. 정물화는 상업이 발달해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발원했다. 보통 정물화를 ‘사물을 배치해 구도를 잡아 그리는 그림’으로 이해하는데, 사실 정물화의 본질은 세속적인 삶이 짧고 덧없다는 인식에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 영원불멸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누리고 있는 이 물질적 풍요와 쾌락을 영원히 ‘정지’시켜 놓고 싶어 그린 그림이 정물화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인증샷이었던 셈이다.

▲ 정물화는 인증샷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셀피제닉’하게 일상을 연출하다

셀카를 비롯한 인증샷의 일상화는 디지털 기기에 힘입었다. 주어가 ‘나’로 시작하는 일상을 기록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인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의 발명은 유레카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조건과 환경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굳이 무거운 디카를 소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의 스펙은 거듭 진화했고, 게다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한 가정 한 자녀 시대’를 넘어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된 지금, 이대로 가다간 이모와 조카, 사촌지간이란 촌수가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타인에게 받아야 할 사랑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자기애’가 인증샷을 통한 자랑질로 충족되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렇게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무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다양한 셀카 앱들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2017년에 떠오를 10대 혁신 기술 중 하나로 360° 셀카의 부상을 지목할 정도로 셀카 앱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는 셀카 앱 Ⓒapkpure.com(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운로드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그중에는 생체 인증에 주로 사용되는 안면 인식 기술을 적용한 셀카 앱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작한 앱 ‘셀피(Selfie)’는 셀카를 찍으면, 인공 지능을 활용해 사진을 자동으로 보정해 준다. 이제까지 셀카 앱의 트렌드는 대체로 피부를 보정해 주거나 필터를 이용해 ‘분위기’를 덧칠해 주는 방향으로 진척돼 왔다. 그런데 최근엔 보다 유희적 요소가 강해지고 있다.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특수 효과를 넣을 수도 있고, 배경에 동영상을 입힐 수도 있다. ‘셀피제닉(Selfie-genic)’이 일상을 예능으로 만들고 있는 지금, 단지 사진만 잘 받는 ‘포토제닉(Photogenic)’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시장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는 인증샷 문화

셀카 앱은 미디어와 콘텐츠, 하드웨어 부문으로 점차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IT업계의 유니콘으로 부상할 정도까지 됐다. 셀카와 인증샷 트렌드가 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셀카와 인증샷 문화의 확산이 비단 IT업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홈퍼니싱(Home Furnishing) 시장과 홈드레싱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SNS에 공유되는 인증샷은 대충 아무렇게나 찍은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연출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흐트러진 침구, 얼룩이 묻은 테이블보, 변색된 머그컵을 그대로 찍는 사람은 없다. 중심이 되는 피사체 주변에 자연스럽게 놓인 소품들도 알고 보면 신경 써서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인증샷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그것이 연출된 걸 뻔히 다 알면서도 멋진 모습에 감탄하고 부러워한다. ‘연출력’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 자라홈의 데코 아이템. 인증샷 문화는 홈퍼니싱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zarahome.com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연출력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득템’에 눈을 돌린다.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일상용품, 세련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을 사 모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홈퍼니싱 제품의 매출이 올라가고 있으며, 저성장 속에서도 지속적 호황을 예측하고 있다. 이케아, 무인양품, 자라홈, H&M홈 등 해외 홈퍼니싱 시장이 선전하는 가운데 국내 가구업체도 홈퍼니싱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며, 패션 업체도 영역을 확장해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하나 더. 집에서 셀카를 찍는다고 해서 무릎 나온 추리닝 따위를 입고 대충 찍을 수는 없다.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홈웨어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평범한 일상의 자랑이 다반사가 된 인증샷 문화는 향후에도 다양한 변주로 지속될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인류에게 내재된 유전인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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