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9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입니다”
처음엔 독자(讀者)로 만났습니다. 1994년으로 기억합니다. 제일기획 사보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은 어느 시골 과학도가 『네이처』 지(誌)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봐 왔던 사보는 사내 필진이 수집한 사내 소식과 외부 필진이 쓴 교훈적인 이야기를 적당히 버무린 평범한 것들 일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일기획 사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광고 이론을 정립해 주는 각종 특집에 해외 광고계 동향, 해외 광고인 인터뷰, 감동적인 크리에이티브 분석까지…. 그 당시에 이미 세계적인 광고 전문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구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필자(筆者)로 만났습니다. 1997년 8월호 특집은 ‘기업 PR이 변하고 있다’였습니다. 이 특집의 필진은 두 명의 교수님과 두 명의 사내 전문가였는데 영광스럽게도 제가 삼성전자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 담당자로서 그중 한 명에 포함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발행인(發行人)으로 만났습니다. 제일기획 창립 3년 차인 1975년에 창간된 사보는 전통적으로 제일기획의 대표이사가 발행인을 맡아 왔는데 2012년 제가 열 번째 발행인을 맡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
『사기』를 쓴 사마천의 말입니다. 그동안 사보의 이름은 ‘사보 제일기획’에서 ‘사보 제일’, 그리고 지난해에는 ‘매거진 제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위치도 독자에서, 필자로, 발행인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제일기획 사보는 곧은 한 길로 왔습니다. 그 길은 바로 ‘세계적인 광고 전문지’입니다.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입니다”
그 제일기획 사보가 2017년 9월로 500호를 맞았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사보의 장대한 역사로 보면 의미 있는 중요한 계단 하나를 올라선 셈입니다. 저는 이번 특집호가 이제까지의 500호를 정리하고 미래의 또 다른 500호를 준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일기획 사보를 한번 정의해 봤습니다.
먼저 제일기획 사보는 살아 있는 역사책입니다. 광고에 대한 숫자적 데이터는 제일기획이 해마다 발행했던 광고연감에도 있지만, 그 시대 그 현장들은 모두 사보에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제일기획 사보는 책임감입니다. 광고인에 대한 책임감, 업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그래서 광고인을 꿈꾸는 학생들은 제일기획 사보를 보며 꿈을 키워 왔고, 업계 전문가들은 제일기획 사보를 받아 보며 국내와 해외 광고계의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제일기획 사보는 자부심입니다. 세종대왕에게 집현전이 숨은 자부심이었듯이 제일러들에게는 사보가 숨은 자부심입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민관(民官)이 한뜻이 돼 『조선왕조실록』을 지켰던 것처럼 시대에 맞춰 그 형태는 달리해야 하겠지만 끝까지 계승해 나가야 할 우리의 자산입니다.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이다.”
사랑의 시인 바이런의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과거의 뿌리를 제대로 바라볼 때 제일기획 사보는 앞으로 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모든 기업은 미디어 기업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일기획 사보는 활주로입니다. 2012년 말, TV 광고 대신 ‘Coca-Cola Journey’라는 웹진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코카콜라를 선두로 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Story’, GE의 ‘GE Report’, 인텔의 ‘iQ’, 여기에 삼성전자의 ‘뉴스룸’까지…. 세계는 바야흐로 브랜드 저널리즘의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즉 기업이 소비자들을 광고 메시지로 설득하는 타깃의 시대에서 기업이 콘텐츠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구독자의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은 미디어 기업이다.”
「실리콘밸리 워처」의 발행인 톰 포렘스키가 한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시대를 맞아 사보가 제일기획을 미래로 이륙시키는 중요한 엔진 중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동안 브랜드 저널리즘에 관한 노하우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쌓아 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500호를 맞이해 제일러를 포함한 그동안의 모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모든 필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역대 발행인 여러분 노고 많으셨습니다. 역대 사보 담당자 여러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