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1
글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그야말로 비주류의 발굴 시대인 것 같다. 최근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사람이든 상품이든 무엇이든 기존에 없던 것들을 결합시킨 것들이 주목받는다. 지난여름을 강타했던 스포츠 용품 휠라와 막대 아이스크림 메로나의 결합처럼 말이다. 이는 ‘정상적 범주의 편견을 깨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우리가 매력을 느끼거나 심지어 열광하는 현상이다.
범주,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
도대체 그런 현상의 이유는 무엇일까? 의외로 심리학적인 대답은 간단하다. ‘범주(Category)’라는 것 자체가 우리 인간이 지니는 본능적 현상이라는 데 그 실마리가 있다. 범주란 무엇인가? 명사다. 그리고 우리는 전혀 다른 두 대상을 같은 명사로 부르는 매우 독특한 언어 활동을 한다. 무슨 이야기냐? 아래를 보자.
왼쪽과 오른쪽 어느 것이든 우리는 ‘새’라고 부른다. 당연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심리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문을 던진다. 도대체 전혀 다른 위의 두 모습을 어떻게 우리는 같은 종류, 즉 범주로 묶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그래야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효율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이다.
만일 위 두 사진 어느 것이든 그 명사 이름을, 즉 범주를 모른다면? 우리는 매번 그것을 묘사하거나 서술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범주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해서 범주적 판단을 하고 싶어 한다. 범주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아래와 같은 추상화를 보면 다소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은 새로운 범주를 갈망한다
어떤 대상을 보고 범주 이름을 대답하지 못하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왜? 내가 그 대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주 이름을 말할 수 있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러니 인간은 더 많은 범주를 알기 원하고, 그 새로운 범주로 대상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인간은 늘 새로운 범주를 갈망한다.
그런데 새로운 범주를 만드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전혀 없는 새로운 명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겠지만, 이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그 어휘에 동의하고 이해하고 또 사용해 줘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가장 간편하면서도 빠른 방법은 범주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학교’라는 말을 알고 ‘종’이라는 말을 아는 아이는 ‘학교종이 땡땡땡’이란 노래를 들으면서 그 ‘학교종’을 바로 이해하지 않는가.
자, 그런데 여기에서 학교종은 당연히 ‘학교에 있는 종’이다. ‘학교로 만든 종’이나 ‘학교가 안에 들어가 있는 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당연히 전자를 예상하고 있는데 아이 앞에 후자들 중 하나를 보여 준다면? 아이는 다소 놀라면서도 굉장히 재미있어 할 것이다. 자신의 예상이 재미있게 깨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모든 코미디의 기본 요소다. 범주의 의외의 조합이나 비상식적인 연결 말이다. 한 개그맨이 관객에게 “여러분께 지금부터 도넛 상자를 하나씩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관객들은 모두 ‘도넛이 들어가 있는 상자’를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그 개그맨이 ‘도넛으로 만든 상자’를 나눠 주면 받아드는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릴 것이고, 아마 대부분은 이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얘기할 것이다.
범주의 새로운 결합
그러니 결론은 분명해진다. 첫째, 사람들은 범주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싶어 한다. 둘째, 그래서 범주를 더욱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며 가지고 싶어 한다. 셋째,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범주의 결합이다. 넷째, 범주를 연결시킬 때 그 연결 방식이 나의 예상과 다르면 우리는 놀라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자, 그렇다면 이제 남는 질문은 단 하나다. 그 수많은 의외의 범주 결합들 중 우리는 어떤 것에 유독 매력을 느끼는가. 불행하게도 그 공통 코드를 알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떤 대상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그야말로 다양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허용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만이 그만큼 다양한 범주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낼 것이다. 뒤집어 놓고 봐도 말이 된다. 그렇게 개방적이고 허용적인 사람일수록 범주의 새로운 연결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표시하니 말이다. 그러니 한 사람의 심리학자로서 최근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더 열린 마음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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