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3
글 정재학(경제∙경영 칼럼니스트)
대중에게 비난 받는 것보다 잊히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심리가 있다.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존재감이 각인되는 쪽이 더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미움과 힐난은 관심의 또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브랜드의 세계에서도 소비자들의 ‘애증’을 대조시켜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다.
청국장, 홍어회보다 ‘마마이트’
유니레버의 ‘마마이트(Marmite)’는 이스트 추출액으로 만든 일종의 잼이다. 주로 영국 사람들이 토스트를 먹을 때 발라 먹는 음식이다. 하지만 달콤한 딸기잼이나 사과잼과는 거리가 멀다. 식욕이 전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우중충한 색과 독특한 향, 짠맛 때문에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린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국장이나 홍어회 정도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마마이트 하면 떠오르는 세계적인 스타가 있다. 바로 마돈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돈나는 “마마이트를 먹는 게 최고의 악몽”이라고 말했을 만큼 마마이트의 ‘사생팬’이 아니라 ‘안티팬’이다. 마돈나 정도의 팝스타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아마 사내에서 긴급비상대책 회의가 한 번쯤 열렸을 법도 하다. 하지만 마마이트는 마돈나보다 더한 안티팬들의 무수한 악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팔리고 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의 독설을 은근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Love it or Hate it’
마마이트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동안 꾸준하게 추진하고 있는 캠페인이다. 브랜드를 싫어하는 안티팬들에게 구구절절 해명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껏 싫어하라고 장려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마마이트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콘텐츠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별도의 콘텐츠를 함께 올려놓을 정도다.
▲자사 제품을 좋아하는 소비자와 싫어하는 소비자를 대별시켜 놓은 마마이트 홈페이지. Ⓒmarmite.co.uk
▲인기에 힘입어 출시된 마마이트 보드게임. ⒸPants On Fire Games Ltd
레이디 가가의 <Telephone>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한 미러클 휩(Miracle Whip)은 미국 크래프트의 샐러드 드레싱 브랜드로, ‘양극화(Polarizing)’를 공공연하게 표방한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미러클 휩은 자사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각기 의견을 펼치는 <Take A Side> 캠페인을 벌여 주목받았다. 이 캠페인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는 모두를 위한 제품이 아니다 (We’re not for everyone)”라는 것. 여기에 더해 미러클 휩은 “당신은 우리 편이냐?”고 노골적으로 묻는다. 미러클 휩은 이 질문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1년여 동안 찬반 투표를 실시하면서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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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클 휩의 <Take A Side> 캠페인.
지지자를 결집하라
마마이트는 왜 자신들을 혐오하는 소비자들까지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마케팅을 펼쳤을까? 미러클 휩은 왜 안티팬들의 활약을 부채질했을까? 이는 1960년대 초반 심리학자 스토너(Stoner)가 제기한 이론에서 출발한 ‘집단 양극화 현상(Group Polarization)’과 관련 있다. 집단 양극화란 집단의 의사 결정이 개인의 의사 결정보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행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는 ‘그저’ 좋아하는 정도였지만, 좋아하는 그룹에 속하고 나서부터는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심리적 효과를 말한다. 집단 양극화는 집단 간 대립 구도가 설정되면 추구하는 방향이 더 극명하게 갈라진다.
싫어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을 부각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브랜드 혐오 소비자들을 불쏘시개 삼아서 지지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더욱 강화하는 방법이다.
안티팬들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특정 소비 계층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마케팅으로 핵심 고객층의 지지도를 더욱 결집시킨 사례도 있다. 노동자들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는 음료 브랜드인 스트롱보우(Strongbow)는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타깃을 개척하는 대신, 현재 지지 소비자층의 결집을 시도했다. 고된 하루 일을 끝낸 노동자들이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들을 향해 거칠게 말하는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고소득층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이를 통해 전통적인 지지자들은 더욱 확고한 결속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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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보우의 <Hard Earned> 캠페인.
1인 100색의 시대, 미움 받을 용기도 필요하다
맥도널드의 사례는 또 다른 시사점을 던져 준다. 201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감이 커져 갔다. 그동안 패스트푸드업계의 강자로 군림하면서 파죽지세로 성장해 왔던 맥도널드는 이른바 ‘정크 푸드’의 대명사가 되면서 힘든 시기를 맞게 됐다. 맥도널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메뉴의 다양화, 브랜드의 고급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러한 전략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에 버거킹은 주력 메뉴인 와퍼에 계속 집중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갔다. 극심한 매출 감소로 철수한 프랑스 시장에 15년 만에 다시 진출한 버거킹은 줄을 서서 사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맥도널드가 부진을 떨쳐버리기 시작한 건 2015년 스티브 이스터브룩 현 맥도널드 CEO가 취임하면서다. 자체 조사 결과 맥도널드에서 이탈한 소비자들이 찾아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식 브랜드가 아니라 경쟁사 브랜드였다. 다시 말해 패스트푸드에 대한 수요는 여전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맥도널드는 소비자들이 맥도널드를 좋아했던 바로 그 이유, 즉 저렴하고 간편한 전통적 햄버거로 다시 복귀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감 여론 속에서 상반된 전략을 택했던 맥도날드와 버거킹. Ⓒmcdonalds.com, Ⓒbk.com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대표 강점(Signature Strength)’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데 투자하기보다는 강점을 발전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맥도널드와 버거킹의 사례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1인 100색의 시대다. 국민 자동차, 국민 냉장고 같은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처럼 소비자의 취향이 세분화된 시대에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얘기는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복잡한 개성의 시대, 모두가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해당 브랜드를 싫어하는 소비자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 고객을 더욱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비용 측면이나 효율 측면에서 훨씬 나은 마케팅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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