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5
이승윤(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가성비’, ‘가심비’에 이어 이젠 ‘가잼비’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올랐다. 착한 가격에 재미까지 더해진 가잼비를 좇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과 브랜드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과거 ‘펀마케팅’의 새로운 버전인 셈이다. 제품의 핵심 가치인 기능과는 무관한 소소한 재미를 위해 기업과 브랜드는 ‘재미력(力)’까지 구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가성비를 넘어 가잼비로
페니 럭(Penny Luck)은 ‘행운을 신으세요(Wear your luck)’란 브랜드 콘셉트를 가진 신발 브랜드다. 그들이 판매하는 평범해 보이는 구두에는 재미있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신발 밑창에 1 페니 동전을 심어둔 것이다. 미국에는 “거리에서 주운 1페니 동전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속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상대방의 행운을 빈다는 뜻에서 1 페니 동전을 선물하는 사람들도 있다.
페니 럭은 그런 속설을 놓치지 않고, ‘이 신발을 신고 행운을 몸에 지닌 채 현관을 나서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브랜드 스토리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의미까지 담겨 있는 소소한 재미를 통해 미국에서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수록 재미 요소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재미가 소비를 부른다
최근의 신조어인 ‘탕진잼’은 돈을 탕진할 만큼 소비를 하면서 재미를 느낀다는 개념이다. 물론 무분별한 소비를 통해 진짜로 전 재산을 탕진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가격이 저렴한 제품들을 구매하면서 ‘돈 쓰는 재미’를 경험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화장품과 다양한 생활용품을 파는 H & B 스토어를 비롯해 중저가 라이프스타일숍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1000원, 2000원 등 균일가로 생활용품을 파는 다이소가 대표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이소는 그저 값싼 물건을 파는 매장 정도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경험 소비에 재미를 더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근자에 와서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을 가진 가성비를 넘어 가잼비를 주는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덕분이다. 다이소는 특히 20~30대들에게 탕진잼을 주는 장소라는 콘셉트로 어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탕진잼의 성지’로까지 불리고 있다. 한마디로 다이소에 가면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해 보이지는 않지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며, 확실한 만족감을 주는 제품들을 마음껏 구매해도 고작 1~2만원만 지불하면 되는 장소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취향 저격, 재치 있는 아이디어 상품
다이소가 추구하는 탕진잼과 유사한 개념으로 ‘시발비용’이란 것이 있다. 시발비용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홧김에 쓴 비용을 의미한다. SNS상에는 시발비용에 적절한 베스트 아이템 추천 같은 글들이 많다. 탕진잼처럼 적은 비용으로 확실한 재미를 주는 제품들이 주로 소개된다.
원하는 형태로 키보드를 DIY할 수 있는 조약돌 원형 타입의 키보드 자판들부터 본인의 개인 정보가 담긴 택배 상자를 버릴 때 수정 테이프처럼 쓱 문지르면 상자 위 중요 정보를 지워 주는 비밀 보장 스탬프까지 재미나고 저렴한 제품들이 주로 소개된다. 다이소나 G마켓 같은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탕진잼과 시발비용 관련 제품들이 SNS상에서 높은 입소문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 주목해 지속적으로 관련 아이템들을 개발해 소개해 나가고 있다.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 가게’라는 콘셉트로 운영되는 쇼핑몰 펀샵(Funshop)도 재미와 경험이 결합된 마케팅 전략을 선보인다. 여기에서 판매되는 잡다한 물건들은 타인의 눈에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본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재미와 행복을 선사한다. 2002년 오픈 당시부터 기발한 아이디어 전자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며 덕후들의 성지로 소문이 나 승승장구하고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활용한 캠페인
그런가 하면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DNA를 활용해 재미와 경험을 선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지난 2015년 ‘나이키 런 클럽(Nike+Run Club)’ 앱을 론칭했다. 이 앱은 사용자가 러닝의 목표를 설정하고 측정해 그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까지 연결시켜 주는데, 자신이 달린 거리에 따라 화면 색깔이 바뀌는 등 게임적 요소를 가미해 러닝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의 ‘로드마스터’와 ‘트래블마스터’이다. 각각 걷기와 여행에 인증이라는 재미 요소를 더해 즐거운 아웃도어 문화를 조성한다. 모바일 앱에서 해당 코스의 특정 지점에 다녀왔다는 인증 사진을 올리면 나만의 스크랩북이 완성된다. 여기에 움직인 거리를 환산해 전국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도 지급된다. 소비자는 재미를 느끼면서 브랜드와의 교류를 통한 소속감까지 느낄 수 있다.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이 지난 만우절에 자사의 공식 앱과 SNS를 통해 선보인 이색 마케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케이스다. 버거킹은 만우절을 맞아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초콜릿 와퍼’ 영상과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 가상의 신메뉴가 온라인에서 공개되자 전 세계 버거 마니아와 초콜릿 마니아들까지 합세해 만우절 이벤트를 즐겼다.
버거킹 <초콜릿 와퍼> 만우절 캠페인 영상
기업들은 이제 “팔지 마라. 경험하게 하라”를 외치고 있다. 필요에 의해서 구매하는 물건들은 이미 충분히 많이 소비됐다.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소비자들은 이제 필요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소비를 한다. 확실한 재미와 행복을 위해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어떻게 재미를 녹여낼 것인지 더 ‘진지하게 재미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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