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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에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바로 로저 해추얼 아카데미(Roger Hatchuel Academy).
칸 국제광고제의 공식 행사 중 하나인 로저 해추얼 아카데미는
전 세계 광고 꿈나무들에게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5 로저 해추얼 아카데미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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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of Sccess Is Showing Up

미국의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80% of success is showing up.” 이 말을 자주 인용하던 생물학 교수님은
매일 오전 9시 정각에 출석을 부르고, 지각자를 모두 결석 처리했다.
교수님은 늦게 나타나는 마음가짐으로는 오나마나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항의에도 자신의 출결 시스템을 고집한 교수님은
진심으로 우리가 그 교훈을 터득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의 가치를 깨달은 것은 지구 반대편, 프랑스 칸에서였다.
2015년 6월 21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세계 광고인의 축제, 2015 칸 국제광고제는
각국 최고의 인재와 아이디어를 모아놓은 크리에이티브의 장이다.
그중 로저 해추얼 아카데미는 역사가 깊은 교육 과정으로,
만 23세 미만의 햇병아리들을 광고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 의외로 인간적 감성이 뚜렷했던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인터뷰

모든 공과 사가 기회다!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된 나른한 월요일 아침,
아카데미 교수진 팀 멜로스(Tim Mellors)와 클라이브 챌리스(Clive Challis)는
생물학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줬다.

“여러분은 일주일간 알코올 중독, 수면 부족, 무대 공포증과 싸울 것이다.
‘9 to 6’ 학습 일정이 끝난 후 시상식을 보고 나면 여러분은 그대로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을 것이다. 절대 그러지 말도록. 작년에는 새벽 1시 반의 파티장에서
취업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칸의 모든 공과 사가 기회다. 이 아카데미는
일생을 바꿀 중대한 기회니 부디 잠으로 낭비하지 말길.”

▲ (좌)광고인은 복장부터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팀 멜로스 CD,
(우)성장의 기반은 피드백이기에 모든 평가와 질문에 공평했던 클라이브 챌리스 교수

아카데미의 책임자인 멜로스 CD는 광고회사 그레이를 월드클래스로
끌어올렸다고 정평이 난 혁신가다. 또한 수업을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챌리스는
런던미대(UAL)에서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유명 교수다. 아주 조금은
의심도 가졌지만(파티장에서 취업이 됐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두 사람이 말한 ‘기회’는 일주일이 지나면서 분명해졌다.

모든 시간이 철저한 실전


아카데미의 교육 방침은 교육 자체가 아니었다. 머나먼 한국에서
홈페이지를 뒤적였을 때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공부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특강을 한 유명 인사는 TED에서 더 이름을 알린 오길비 앤 마더의
로리 서덜랜드(Rory Sutherland)부터 중동 테러리스트 전문 협상가
사이먼 웰스(Simon Wells)까지 그 스펙트럼이 무척 다양했으며,
강연보다는 토론과 팀 프로젝트가 주를 이뤘다. 모든 시간은 철저한 실전이었고,
수상작에 대한 설명을 듣는 평범한 자리조차 심사위원이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이에게 샴페인 한 병을 선물해주겠다”고 약조를 하면서
열띤 논쟁의 장이 됐다(애플 캠페인이 그랑프리 받을 자격이 없다고 심사위원에게 말한
멋진 학우는 아쉽게도 샴페인 없이 귀국했다고 한다).

방심하고 있으면 휩쓸리는 페이스에 다들 지칠 만도 했지만,
수업이 끝나고 파티장을 향하는 학우들은 모두 즐겁게 반짝였다.
파티를 즐기면서도 우리는 그날 그랑프리를 받은 캠페인과
새로운 디지털 트렌드에 대해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취업의 지름길이라는 야심한 시각의 파티장 

열망을 키워내는 거대한 실험의 장



▲ (좌)팀워크를 중요시하는 도이치 Inc 북미 CCO 페테 파바트, 
(우)좋은 광고는 객관적으로도 좋아야 한다는 베를린 스쿨 오브 크리에이티브 리더십 총장 미하엘 콘라트

세계적 대가들의 지혜가 응집된 수업 내용, 그리고 48시간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진행된 팀 프로젝트. 무엇 하나 충분히 소화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아카데미의 목표는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소화해내는 게 아니었다.
아카데미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었다. 5일간의 교육으로 광고 역량을
갑자기 키울 수는 없지만, 크리에이티브의 정맥에서 거대한 자극들과 부대끼며
광고인의 마음가짐을 다질 수는 있었다.

경쟁 PT를 준비하고 발표하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면서 한 번도 광고 제작 능력이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앞으로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견딘 후
이곳 칸을 다시 향할 열망을 키워줬다. 광고를 하리라, 새롭고 다르리라,
당당하게 이곳에 다시 입성하리라.

▲ 2015 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들

마지막 날 우리는 5일간 동고동락한 멜로스 CD, 챌리스 교수, 그리고
서로에게 같은 마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레드카펫에서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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