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2. 10:00

“하는 일이요? 여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랑 비슷하죠. 단지 다른 게 있다면 크리에이티브 플래닝을 같이 한다는 것? 크리에이티브 플래닝을 한다는 건, ‘목적’에 적합한 요소를 찾아내는 걸 말해요. 가령 ATL은 “TV 캠페인을 하는 거야”라고 이미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죠. “오늘 뭘 먹지?”라는 질문[목적]에 “오늘은 중국음식 먹는 날이야”란 답변이 이미 정해져 있는 거죠. 짜장면을 먹을지 짬봉을 먹을지 볶음밥을 먹을지는 차후의 문제고요. 그런데 지금은 ATL이나 BTL을 구분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즉 목적에 따라 우리가 선택하는 방법이 달라야 마땅하고, 그 선택이 밸런스와 조합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죠. 그래서 디지털에서 플래닝이란 단순히 ‘미디어 플래닝’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크리에이티브 밸런스를 고려하는 일인 거죠. 테크놀로지요?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인상적이었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우선 <시네노트>를 들 수 있다. <시네노트>는 2011년 갤럭시 노트 론칭 후 진행했던 캠페인인데, 성과를 떠나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다. 소비자들이 갤럭시 노트를 통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웹툰 작가와 영화감독들을 참여시켜 장르적으로 접근했다. 갤럭시 노트로 웹툰을 그리고, 디지털 단편영화를 촬영했던 캠페인이다. 웹툰으로 스토리 전반부를 보여주고, 그 스토리를 릴레이처럼 이어서 영화가 완결시키는 형식이었다. 영화는 이재용, 강형철, 장훈 감독이 각각 로맨스, 코미디, 액션 부문을 맡아 촬영했다. 요즘 많이 만들어지는 웹드라마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2015년에 진행했던 <#갤스타그램>이다. 다양한 소셜 채널을 활용해 소비자들이 갤럭시 S6의 기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셜 채널에 적합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소셜상에서 소비자들이 가볍게 훑어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심플한 콘텐츠에 초점을 맞췄다. 결과물로 보면 규모가 매우 작은 캠페인이었지만,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좋은 캠페인, 성공적인 캠페인이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강중약’이다. 만약 클럽에 춤을 추러 갔는데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가 흘러나온다면 어떻겠는가. 아무리 좋은 얘기도 타깃이나 상황에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종종 소셜상에서 진지하고 무거운 메시지를 다룬 경우를 보게 되는데, 과연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캠페인의 목적에 따라 강중약이 철저히 고려돼야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지난해 진행했던 갤럭시 S7의 VR 캠페인 <S7 스낵무비 360>이다. VR을 활용해 갤럭시 S7의 다양한 기능을 표현한 캠페인으로, 모바일 환경에서 소비자들이 제품 출시 전 갤럭시 S7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캠페인은 세 가지를 고려했는데, 우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제품의 특장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갖고 있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간단 명료하기를 원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공통분모가 VR이었고, 그래서 기어 360으로 촬영해 콘텐츠를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VR’이라는 테크놀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 캠페인을 제작한 게 아니라, 캠페인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 VR이었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캠페인의 성공을 일정 부분 담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콘텐츠에는 그 콘텐츠만의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얘기를 잠깐 해보면,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는 테크놀로지를 상당히 활용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장면도 CG를 사용한 거였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는 “나는 테크놀로지로 만든 영화야”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 영화가 강조하는 바는 삶의 가치와 의미다.

반면에 <아바타>는 “나는 테크놀로지로 만든 영화야”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그 차이다. 캠페인에서도 테크놀로지를 드러내야 할 때가 있고 숨겨야 할 때가 있다. 만약 일찍이 세상에 없었던 기술을 선보여야 하는 캠페인이라면 당연히 전면에 부각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테크놀로지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없으며, 캠페인의 ‘흥행’을 보장해주는 보증수표도 아니다. 어떤 경우든 목적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 목적에 잘 부합했을 때 효과가 있다 또는 없다를 말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인데, 이에 따른 부담감은 없는지?

당연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신 테크놀로지를 모른다고 해서 뒤처지는 건 아니다. 아무리 신기술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영역 중 하나일 뿐이지, 그것이 기존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뤼미에르형제가 세계 최초로 영화를 만들어 상영했을 때 관객들은 천지가 개벽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정지된 화면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면 더는 놀랍지 않다. 그러니 테크놀로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물론 디지털은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로지 그것만 중요하지는 않다. 디지털은 모든 캠페인의 ‘정답’도 아니며, 다른 모든 것의 대변자도 아니다. 예컨대 클라이언트가 TV광고를 하고 싶은데 예산이 부족할 때 그 대안이 곧장 디지털로 직행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디지털이 저렴하다는 통념도 근거가 없다. TV와 디지털은 이항대립이 아니다. TV의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디지털일 뿐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크리에이티브와 테크놀로지의 관계를 정의한다면?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얼마나 독특한가, 얼마나 예술적인가, 어떤 인사이트를 주는가 등이 크리에이티브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크리에이티브의 정의가 확대돼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가,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질문한다. 예술적 기준에는 만족하지 않더라도 효율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 좋은 크리에이티브라 할 수 있다. 요컨대 과거에는 ‘보기 좋은 떡’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맛이 좋은 떡’을 중요시한다. 우리가 예술가는 아니지 않는가.

테크놀로지는 효용성이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요소다. 테크놀로지의 어원인 ‘테크놀로지아(Technologia)’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파생한 단어다. 테크네는 직물을 짜는 공예 기술을 가리키는데, 이를 통해 테크놀로지 자체가 실용성, 효용성, 액티비티와 관련 있음을 알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활용 여부가 크리에이티브 정도를 가름하지 않는다. 결국 테크놀로지를 얼마나 적절한 문법으로 균형감 있게 접목했는가가 판단 기준이다.

 

마지막으로 제작팀들이 가져야 하는 마인드에 대해서 한마디.

나는 우리 직업이 배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주어진 역할에, 마치 그 사람인 양 몰입해 연기한다. 또한 다양한 조건에 따라 연기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그 조건이 ‘우물’이다. 예전에는 우물을 하나만 파면 충분했고, 얼마나 깊이 파느냐가 중요했다. 지금은 그런 우물이 여러 개 있어야 하는 시대다. 더욱이 각 우물이 서로 통할 수 있게 연결해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가이자 과학자이고, 기술자이자 철학자였다. 요즘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다빈치 같은 ‘총체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게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그 인물의 외모와 표정과 말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디지털 말고 다른 것을 찾는다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적절한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으려면 하나의 우물로는 부족하다. 디지털본부에 있다고 해서 디지털만 알아야 하는 게 아니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면 모든 영역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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