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2. 10:00

마치 인간처럼 움직이고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역사가 깊다. ‘로봇 3원칙’으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 P.K.딕 같은 20세기 초 SF작가들, 그리고 이른바 로봇영화의 원형으로 꼽히는 1927년 작 <메트로폴리스>에서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속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로봇’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상황을 이해하는 ‘감성적’ 인공지능의 발달

인공지능이란 명칭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로, 이때 학술 연구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적어도 6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오래된 개념임에도 최근 각종 미디어가 앞다퉈 인공지능을 중요한 화두로 다루고 있고, 페이스북과 애플 및 구글 같은 IT 거물들도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단지 소설이나 영화, 또는 연구실 안에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와 만나는 기술로 상용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자연어처리기술(Natural language processing), 상황인지기술(Contextual recognition technology) 등 관련 기술들이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최근 감성컴퓨팅(Affective computing) 또는 감성 ICT(Emotional ICT)가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자동으로 인지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처한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가장 알맞은 형태로 감정 정보를 처리해 제품/서비스로 제공함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감성컴퓨팅을 접목함으로써 최적화된 ‘맞춤형 경험(Personalized experience)’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마케터들이 눈여겨보는 기술이기도 하다. 시장 최전선에 서 있는 마케터들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활용, 소비자가 제품 및 서비스를 선택하고 소비하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아가 어떻게 그 감정을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웨어러블로 확대되는 감성컴퓨팅 영역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에 자율적으로 대처하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인공지능은 인간이 보내는 다양한 신호를 수집 및 파악한다. 얼굴 표정이나 팔다리의 움직임, 땀, 호흡, 체온, 심장박동 등 다양한 생체 지표를 인간 감정의 분석 기준으로 인식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뇌파, 심전도, 심박수, 피부전기전도도 등이 활용되고 있으며 인공지능은 이러한 신호에 대해 사전 트레이닝을 거친 후 생체 신호가 어떤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지 파악한다.

또한 영상이나 음성을 기반으로 하는 감성인식기술도 활발히 사용된다. 얼굴 표정과 제스처를 읽어들인 컴퓨터가 얼굴의 특징점을 활용해 감정 상태를 이해하거나, 목소리의 강약∙장단∙고저∙운율∙속도 등을 파라미터로 사용하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비롯한 모바일 디바이스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이런 신호를 수집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진 실험실 등 한정된 장소에서만 이러한 인식기술이 사용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이 보편화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사용자가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사용자의 감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디바이스들이 출시되는 중이다.

가장 유명한 감성분석회사 중 하나인 어펙티바(Affectiva)는 실시간으로 감정을 파악해 LED 색깔로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을 알려주는 웨어러블 팔찌 ‘큐-센서(Q-sensor)’를 내놓았다. MIT는 음성을 주된 지표로 사용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는데, 말소리와 생체 패턴을 기반으로 현재 대화가 행복한지 또는 슬픈지를 파악함으로써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는 ‘소셜 코치’ 디바이스를 지향한다. 이 외에도 피트니스 트래킹과 생체인식 기반 감정기술을 결합한 ‘젠타(Zenta)’ 팔찌, 체온∙맥박∙전도도를 파악하는 센서를 활용해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위험 수위 알림을 주는 ‘필(Feel)’ 팔찌 등 사용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파악하는 웨어러블이 감성컴퓨팅의 기반을 넓히는 중이다.

▲ MIT에서 개발 중인 소셜 코치 솔루션 ⒸMITCSAIL

 

▲ 피트니스 트래킹과 생체인식 기반 감정기술을 결합한 젠타 ⒸVINAYA

 

캠페인 분석에서 인터랙션 제고까지, 최적의 메시지와 타이밍

이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첫 번째 가능성으로, 마케터들은 텔레비전이나 모바일 광고 또는 오프라인 이벤트까지 다양한 캠페인의 실제 효과를 측정하고자 한다. 패널 조사나 인터뷰에 의존하지 않고도 캠페인이 소비자에게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정량적∙정성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광고가 송출되는 디바이스의 카메라를 활용해 소비자의 얼굴을 인식하고 감정을 읽어내는 솔루션이 주로 사용된다.

프록터앤갬블은 이모션트와 함께, 유니레버 및 코카콜라는 어펙티바와 함께 캠페인이 소비자에게 불러일으킨 감정 반응을 다음 캠페인 설계에 반영하고 있는데 이모션트와 유니레버 모두 얼굴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감정을 파악한다. 예컨대 눈썹을 치켜뜨거나 입가 근육을 찌푸리는 등 얼굴 근육의 모양을 인식한 후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함으로써 사용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내는 식이다. 어펙티바가 보유한 얼굴 데이터베이스는 약 480만 명에 달한다. 인공지능이 학습 및 비교할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할수록 분석 결과가 당연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 어펙티바는 수백만 명의 표정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affectiva.com

 

게다가 예전에는 얼굴 움직임을 인식할 정도의 해상도를 보장하는 하드웨어가 한정돼 있었다면 이제는 어떤 디바이스든 영상을 고화질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캠페인 효과를 측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소비자에게 개인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맞춤형 캠페인(Customized campaign) 진행도 가능해졌다.

일례로 크로아티아의 스타트업 에밀리(Emily)는 소비자 인게이지먼트를 제고하고 효과적으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을 진행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특히 리테일 현장에서 고객 경험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디바이스 주변의 ‘에밀리 존(Emily zone)’ 안에 있는 소비자의 얼굴을 카메라로 인식한 후 성별과 나이뿐만 아니라 감정을 분석함으로써 특정 오디언스 그룹에 적합한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송출한다. 리테일 매장 내 소비자의 움직임과 감정 상태를 결합해 매장 내 VM(Visual merchandising)에 대한 인사이트도 제공한다. 이처럼 특정 소비자가 사이니지 또는 웹페이지를 쳐다볼 때 감정 및 상황에 따라 콘텐츠를 즉각적으로 바꿔 송출할 수 있다면 소비자 경험은 예전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으로 제고될 것이다.

▲ 리테일 매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에밀리 Ⓒemily.zone

 

다각도로 활용 가능한 감성컴퓨팅

감성컴퓨팅 시장은 앞으로도 성장을 거듭해 2020년에는 약 1조 6000억 달러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감정과 상황에 맞는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고자 여러 산업에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감성컴퓨팅의 두 번째 단계가 첫 단계에서 수집한 정보를 모아 실제의 인간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아가 그를 특정한 입력 신호로 전환해 차후 과정을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인 만큼 사용자가 별도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제품 및 서비스들이 고민되고 있다.

사용자의 기분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도가 조절되는 전등, 감정 상태에 가장 알맞은 음악을 선택해 재생하는 스트리밍 앱 등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이성과 감성을 모두 활용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 그가 가장 선호할 만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제 소비자가 광고 등 콘텐츠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측정할 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사용자의 경험 자체를 새로운 방향으로 제고하고, 그와 즉각적이고 긴밀한 인터랙션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감성컴퓨팅을 접목하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애플에 앞서 2015년 닐슨이 감정 측정 스타트업 이너스코프를 인수한 것도 소비자의 경험을 최적화하고자 하는 마케터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앞으로 마케터들이 감성컴퓨팅을 활용해 어떻게 ‘최적의 메시지를 최적의 시간에 최적의 오디언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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