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3. 10:00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는 1898년 1월 「로로르(L’Aurore)」에 자신의 소신을 밝혔습니다.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투옥됐던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지요. 에밀 졸라가 이 같은 글을 게재한 건 이 신문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결국 당대의 예술가와 과학자, 교수들의 지지를 얻으며 드레퓌스 재심 운동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이 일로 인해 에밀 졸라는 징역 1년과 벌금 3천 프랑을 선고받았으며, 훈장도 박탈당했습니다. 당사자인 드레퓌스 대위는 20세기로 넘어가서야 비로소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자신의 신념과 대의명분을 피력하기 위해 뭔가 큰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이 땅에 서구 문물이 유입되던 시절, 가부장제에 종속돼 있던 여성들은 자신이 하나의 인격적 주체임을 천명하기 위해 머리를 싹둑 잘랐습니다. 당시 단발랑(斷髮娘)들은 사회적 지탄과 호기심의 대상이었지요.

 

요즘에도 소신이나 신념을 밝힌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있습니다.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치지 않더라도 슬로건이 적혀 있는 티셔츠를 입음으로써, 옷깃에 배지를 달고 다님으로써 간접적으로 의지를 표현합니다. 내 가치관을 표현하는 방법이 놀이처럼 변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밑바탕에는 내가 ‘+1’이 됨으로써 세상이 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Cheil』 매거진은 지난 3월호에서 ‘Contend’라는 키워드를 다뤘습니다.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도 당당하게 주장하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취향을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을 짚어봤지요. 4월호의 키워드는 ‘Conclude’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거나 결론을 내릴 때 과거에는 매스미디어에서 가리키는 방향을 좇고, 전문가가 얘기해 준 것을 곧이곧대로 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팩트의 팩트를 다시 검증하는 ‘팩트광 시대’.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경험과 정보를 취합해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을 ‘뉴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Contend’와 ‘Conclude’ 사이에는 ‘내 방식대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전히 저성장 시대입니다. 시간이든 돈이든 한정된 재화를 통해 최대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실패하지 않아야 하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팩트가 필요한 법이지요.

예전에 한 드라마에서 자기 주장이 강한 남자 주인공이 “내 가방은 내가 든다”라고 말해 한동안 그 대사가 유행어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의 속뜻은 ‘결론은 내가 내린다’입니다. 요즘 소비자들도 자신의 가방은 자신이 듭니다. 나의 팩트를, 나의 결정을 남에게 미룰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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