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5. 15:00

‘시대정신’은 한 시대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을 가리킨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어떤 분야든 시대정신에 둔감하거나 그것을 외면해서는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브랜드가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수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정신은 그 밑바탕에 ‘공유(共有)’의 감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아리아나 그란데, 에드 시런, 드레이크, 그리고 BTS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지난해 전 세계 음악 산업을 견인한 주인공들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올해 초 발표한 ‘Grobal Music Report 2019’에 의하면 2018년 세계 음악 산업의 총매출은 약 190억 달러이며, 그중 상당수가 이들에 의해 달성됐다.

전 세계 음악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역 중 BTS가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를 단지 K-Pop에 국한시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BTS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만큼 BTS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BTS 예술혁명』을 쓴 세종대 이지영 교수는 BTS 현상의 근간에 시대정신이 있다고 통찰한다.

그 시대정신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수평성’이다. 인종, 젠더, 종교 등 갖가지 차별을 넘어서는 수평성에 대한 사회적 갈망이 BTS의 음악적 메시지, 그리고 콘텐츠 소비와 재생산에 긴밀히 연관돼 있는 것이다. BTS는 그들의 팬클럽 아미(ARMY)와도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다.

어찌 보면 시대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 극복해야 되는 것, 해결해야 하는 것 등 ‘결핍’을 기반으로 잉태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탄생해 다양한 층위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 시대정신 중 하나가 바로 히피 문화다.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까지 확산된 히피 문화는 반전(反戰)과 사랑, 평화의 메시지를 내세웠다. 히피 시위대가 군인들이 들고 있던 총구에 꽃을 꽂아준 행동은 그들의 메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른바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라 불린 이들의 메시지가 만약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했다면 반전과 사랑, 평화는 1960년대의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생각을 공유했고, 그것이 음악적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69년 개최된 우드스톡 페스티벌이었다. 라비 샹카, 산타나, 제니스 조플린, 제퍼슨 에어플레인, 존 바에즈, 지미 헨드릭스 등 지금은 전설이 된 뮤지션들이 반전과 사랑, 평화라는 메시지를 공유하며 무대에 올랐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20세기의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이 됐으며, 히피 문화는 패션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시대정신은 가치의 공유를 통해 실현된다.

 

‘구글링하다’란 말은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진부한 느낌마저 들지만, 기업명이 동사로 사용된 의미심장한 사례임에는 분명하다. 이 말은 이제 ‘구글에서 정보를 검색하다’라는 뜻을 넘어 ‘검색’ 그 자체와 동의어가 됐다. 구글과 더불어 동사처럼 쓰이게 된 또 하나의 기업명이 있다. 바로 ‘아마존되다(To be amazoned)’의 아마존이다. ‘아마존되다’는 아마존이 어떤 사업 영역에 진출했을 때 기존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만큼 아마존이 위협적이라는 얘기도 된다.

‘구글링하다’와 ‘아마존되다’ 사이에도 공통분모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두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혁신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지지를 얻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새로운 경험을 혁신한 브랜드가 대세가 된다. 브랜드가 가장 원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세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모두가 대세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두가 시장에서 선두가 되지는 못한다.

대세와 대세 아닌 것 사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복잡한 소비 환경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대정신이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시대정신이 ‘결핍’을 통해 촉발되고 ‘공유’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대의 소비자들이 느끼는 결핍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구현해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소유’보다 ‘경험’이 중시되는 요즘,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은 이제 선택 조건이 되지 못한다. 어떤 경험을 제공해 어떻게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점유하는가가 중요하다. 패션 브랜드가 패션 시장만을, 가전 브랜드가 가전 시장만을 분석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미 스마트워치를 선보인 바 있는 루이비통은 올해 초 무선 이어폰 ‘호라이즌 이어폰’을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패션의 영역을 첨예한 IT 제품으로까지 확장한 것이다. 또한 삼성전자가 선보인 비스포크는 ‘냉장고는 내 뜻대로 디자인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깨고, 소비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른바 ‘대세 브랜드’들의 공통점을 들여다보면, 시대가 추구하는 정신을 지향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브랜드들은 시대정신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브랜드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낸다. 그 과정에서 공유는 필수다. 공유되지 못하는 가치는 그저 ‘선언’이 될 뿐이다. BTS를 보라. 그들이 시대정신을 공유하지 못했다면 아티스트가 아닌 단순한 ‘아이돌 그룹’으로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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