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멀티플랫폼 시대’, ‘미디어에 한계가 없는 마케팅과 솔루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죠. 3월 제일세미나에서는 제가 작업한 작품들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지 함께 확인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2009_Print_제31회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 대상 수상작
2009년, 친구의 제안으로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이하 제아페)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아페가 어떤 공모전인지, 제일기획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몰랐어요. 물론 광고와 마케팅에 대해서도 잘 몰랐죠. 제아페는 매년 여러 광고주의 미션을 과제로 내주는데요. 저희 팀은 그 중 ‘하이모’를 중점적으로 작업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아페는 팀원들과 성향이 잘 맞는 게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저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작업했는데요. 서로 잘 맞아서 자취방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노는 것처럼 자유롭게 작업했죠. 뒹굴 뒹굴 누워서 브레인스토밍도 하고요.^^ 그러던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셋 다 디자인과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노트에 끄적끄적 태풍의 눈을 그리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원형탈모와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미지를 발전시켜보기로 했죠.
이 작품으로 제31회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 대상을 받게 됐고요. 광고주 요청으로 실제 잡지에 인쇄광고로 집행되기도 했습니다.
잡지에서 우리의 작품을 발견한 순간, ‘아, 광고회사에서 일하면 이런 묘미와 쾌감이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요. 제아페를 계기로 저는 크리에이터로서 광고회사 입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2013_Radio_불 끄고 듣는 한 시간짜리 방송
아트디렉터는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만나야 하는 사람도 많고, 촬영도 나가야 하죠. 아이디어도 가만히 앉아만 있다고 떠오르는 건 아니니까 다양한 경험이 필수입니다. 저는 제아페 대상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하계인턴십을 통해 아트디렉터 생활이 저에게 잘 맞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제일기획에 입사하게 됐죠.
입사 후 또 한번의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요.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칸 라이언즈(Cannes Lions)에서는 광고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각 국가를 대표하는 30세 미만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경쟁을 펼치는 영 라이언즈(Young Lions Competitions)가 열립니다. 매년 제일기획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해 영 라이언즈에 나갈 크리에이터를 뽑기 위해 사내 공모전이 열리곤 하죠. 바로 이 공모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2013년, 영 라이온즈에 나가게 됐습니다.
영 라이온즈행 행운을 거머쥐게 된 공모전 과제는 ‘젊은이들에게 어스아워(Earth Hour)를 알리는 캠페인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었는데요. 어스아워란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8시 반, 지구 환경을 생각하며 1시간 동안 불을 끄는 캠페인입니다. 영 라이온즈와 동일하게 주어진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영상을 만들어야 했죠.
공모전에서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주어지는 조건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중요한데요. 1박 2일 동안 만들 수 있는 영상의 퀄리티는 한계가 있겠죠? 그래서 저희 팀은 영상 제작보다는 아이데이션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불을 끄는 캠페인에 참여하게 하려면 불을 끈 상태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우리는 시각이 차단되면 청각에 집중하게 되죠. 그래서 불을 끄고 듣는 라디오 방송을 기획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캠페인 영상 공모전이었던 만큼 라디오 방송을 영상으로 표현해야 했는데요. 암전된 화면에 자막을 띄어 간단하게 라디오 방송 티징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어스아워 캠페인 예고를 했죠. 아이데이션에 전략적으로 시간을 쏟은 결과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영상까지 제작할 수 있었답니다.
2015_Pop Up Store_고래 만들기
다음으로 보여드릴 작품은 오리온 팝업스토어인데요. 에버랜드에 오리온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부스를 제작하고 설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팝업스토어 기획단계. 먼저 에버랜드로 현장답사를 갔는데요. 큰 분수 앞에서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디자인의 스토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고래밥의 고래 모양으로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마치 고래 등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설치하는 시안을 생각한 거죠. 큰 고래 시안을 포함해 몇 개의 시안을 1차로 광고주에 제안했는데요.
과자 패키지 모양을 활용하기도 하고요. 자판기나 초콜릿 팩토리 컨셉으로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광고주와 협의를 거쳐 최종 선택된 안은 처음 현장답사에서 생각한 고래 모양의 팝업스토어. 다만 다른 놀이기구와 혼동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에버랜드 측의 의견을 수렴해 고래가 팝업스토어의 지붕 위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고래 눈에 LED를 넣어 소비자와 소통하는 인터랙션 기능을 추가했죠.
오리온 팝업스토어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입체 조형물을 제작해보는 경험을 했는데요. 큰 고래를 만들려고 전문가를 찾아 익산까지 가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죠.
2016_Book_BEYOND THE BARRIER
이번엔 책을 미디어로 활용한 작품입니다. 갤럭시 S7 글로벌 출시를 맞아 화보를 제작하게 됐는데요. 이전 제품보다 기능이 크게 향상된 갤럭시 S7의 캠페인 슬로건은 ‘BEYOND THE BARRIER’. 슬로건과 어울리는 모델을 선정해 갤럭시의 주요 기능을 표현하고자 했죠. 난민 출신으로 지금은 세계적인 모델이 된 알렉 웩(Alek Wek), 설치미술부터 패션디자인 등 경계 없는 예술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 헤어디자이너이자 지금은 사이클리스트이기도 한 켈리 사무엘슨(Kelli Samuelson)이 우리의 모델로 선정됐습니다. 한계를 넘어 도전을 계속해 온 이들의 필모그래피가 모델로 선정하게 된 이유죠.
협업한 편집 디자이너 분의 의견을 반영해 책 디자인은 장벽을 넘는 듯한 구조적인 디자인을 적용했고요. 책 커버도 S7의 메탈릭한 감성을 살릴 수 있도록 고급스러운 재질을 사용했습니다.
2016_Retail Design & Mobile Page Design_캠페인,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을 다 담다
작년 삼성전자는 영화관 CGV에 리테일 부스를 설치했는데요. 이 부스에서는 조그만 매트에 핸드폰을 올려놓으면 무료로 wifi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일기획은 전체 부스 디자인과 프리 wifi 매트 , 그리고 매트를 사용할 때 핸드폰에 노출되는 모바일 페이지 디자인까지 종합적인 캠페인 디자인을 맡게 됐는데요. 이 작업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 전체를 미디어로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겠죠?
2016_Digital Campagin & Small Concert_여행 떠나기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캠페인은 쉐보레의 ‘SPARK THE ROAD’캠페인입니다. 작년 여름, 우리는 싱어송라이터 혁오밴드의 오혁과 로드트립을 떠났습니다. 먼 길을 떠나기엔 불안하다는 경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였는데요. 실제로 경차 쉐보레 스파크를 타고 여행지를 돌며 소비자들과 여행기를 공유하면 스파크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거란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한 캠페인입니다.
소비자들에게 보다 실제 같은 간접 경험을 주기 위해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운 오혁 씨의 모습을 전하려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는 다른 캠페인과는 달리 매 순간 여행지에서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바빴죠.^^ 또한 소셜미디어로 실시간 소비자들과 소통해야 했기에 스텝들이 정말 고생한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아트디렉터에겐 상황대처 능력과 순발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마지막 여행지 부산에서는 미니 콘서트를 열기도 했는데요. 콘서트 뒷 배경에 황급히 캠페인 로고를 그려넣는 아트디렉터의 순발력을 발휘했답니다.
3월 제일세미나를 마치며
어떻게 보셨나요? 요즘엔 정말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경계가 없는 캠페인, 한계가 없는 크리에이티브가 펼쳐지고 있는데요. 여러분도 이번 제아페를 통해서 자유롭게 여러분만의 크리에이티브를 펼쳐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인데요. 저는 앞으로 해외지사에 파견도 가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요. 아이도 키워야 하고, 저만의 크리에이티브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데요.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어떤 걸 먼저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때, 제가 존경하는 분이 “그냥 다 해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을 때, 뭘 해야 할지 막막할 때는 자유롭게 많은 경험을 해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불가능한 꿈도 꿔보고요. 실수해도 괜찮으니 도전해보는 거죠. 일단 경험해보면 그 가운데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일들의 우선순위가 정해질 거예요. 그리고 다채로운 경험이 멀티플랫폼 환경에서 일하게 될 크리에이터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고요. 이번 제38회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도전하시는 분들과 예비 크리에이터 분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지금까지 오안나 프로의 3월 제일세미나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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