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안녕하세요? 저는 ‘끌’이라고 합니다. 왠 끌 소개냐는 분도 계실텐데 저는 ‘끌로 판다’고 할 때의 그 끌입니다.
어때요? 제 이름,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시죠? 광고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요즘 세대들은 묻습니다. “선배님, 제작할 때 끌로 판다고 하는데 끌이 뭐예요?” 제 소개, 정확히 할게요. 저는 원래 망치로 한쪽 끝을
때려서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겉면을 깎고 다듬는 데 쓰는 연장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광고 제작에서 제 이름은 흔히 쓰는 관용 어구가 됐습니다.
옛날 전동 공구가 없던 시절, 목공을 할 때 일일이 손에 끌을 쥐고 오랜 시간 일을 해야했죠.
그래서인지 아이디어를 낼 때나 제작물을 만들 때, 엄청난 노력을 더해 완성도나 디테일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걸 말할 때 보통
‘끌로 판다’고 하죠.
 
그런데 이 말에는 네거티브한 뜻이 분명 있습니다. “너무 끌로 파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 ‘뭐 그렇게 쓸데없는 데 노력을 하는거야?’
하는 뜻이죠.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저 ‘끌’을 많이 애용해 주시는 목수들 사이에선 이 말이 실제 관용 어구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일하는 탓에 남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목수’에게 핀잔을 줄 때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저 ‘끌’은 무언가를 다듬어서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연장입니다.
끌로 파는 게 기본이라는 이야기죠. 지금 우리가 보는 세계적인 명조각품은 대부분 누군가가 묵묵히 끌로 파서 만든 것이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터 광고계에서 저 ‘끌’의 악명이 높아졌을까요? 아마 무조건 끌로 파라고 강요하시는 분들 때문인 거 같아요.
 
저 ‘끌’도 알고 보면 파는 소재에 따라 목공용, 얼음용, 석공용 등 종류가 많습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로 따지자면 TV광고용, 인쇄용, 인터랙티브용 등 여러 종류가 있을 겁니다. 한번 머릿속을 점검해 보세요.
인터렉티브한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소재가 있는데 이걸 손에 익은 TV 광고용 끌로 무작정 파고 있지는 않은지,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이라는 소재가 작업대에 놓여 있는데 이걸 마냥 톡 튀는 크리에이티브라는 끌로만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하도 오래 써서 끌이 다 닳아버린 것도 모른 채 요즘의 단단한 아이디어를 다듬고 파고 있는지도 확인해 보세요.
 
저 ‘끌’, 끌로 판다는 말이 핀잔 주는 말에 머물지 않도록 제 명예를 회복시켜 주세요. 저는 믿습니다.
끌을 잘 이용하시는 분이 아이디어를 잘 다듬는 크리에이티브의 명인이라는 사실을요!
 
 
sanghun.ahn@samsung.com "메일보내기""> 


   



소셜로그인 카카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