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5. 14:00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지만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을 원한다. 이는 브랜드가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즉, 과거 브랜드들이 물건을 사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더 친해지려는 노력을 해 왔다면, 오늘날의 브랜드들은 함께 놀아주며 충분히 친해진 후 물건을 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변에 수없이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만날 때마다 유쾌한 친구와 더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이치와 같다.

미국의 유명 기타 브랜드 펜더(Fender)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도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120년의 역사를 지닌 경쟁 브랜드가 오랫동안 ‘기타를 파는 것’에만 초점을 둔 탓에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되고 급기야 2018년 파산 보호를 신청하게 된 것과 달리 펜더는 ‘소비자가 기타를 가지고 노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빠르게 사업 모델을 재편했다.
펜더는 지난 5년간 구매 고객들의 프로파일을 분석한 결과, 일렉트릭 기타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남성 뮤지션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50%는 여성이며 프로 뮤지션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구매 고객의 약 90%가 3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기타 연주를 포기하는데, 1년 이상 포기하지 않고 연주를 즐기는 고객들 중 약 10%는 평생 5개 이상의 기타를 구매하며 1만 달러 이상을 소비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펜더는 초보 기타 연주자들이 오랫동안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연주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도출했다.

▲ 펜더는 소비자가 기타를 가지고 노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사업 모델을 재편했다.
Ⓒ펜더(fender.com)

먼저 2016년 펜더 튠(Fender Tune)이란 앱을 출시했다. 펜더 튠은 음정을 인식해 튜닝을 도와주는 앱으로 전문성이 없는 초보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어 5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한 발 더 나아가 2017년에는 매달 9.99달러를 내고 온라인으로 무제한 기타 레슨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펜더 플레이(Fender Play)라는 앱을 출시했다. 유튜브 등에서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는 동영상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좋은 품질의 영상들로 20분만 배워도 노래 한 곡을 서툴게나마 연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연주자가 좋아할 만한 곡을 추천하고, 레슨 받는 과정을 모니터링해 도전 과제를 제시하며 동기를 부여했다. 최근에는 <왕좌의 게임>이라는 미국 인기 드라마의 종영을 기념해 스페셜 에디션으로 4천만원 대의 기타를 선보여 매우 큰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펜더는 소비자의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덕분에 큰 사랑을 받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온라인 비즈니스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보였던 오프라인 매장이 최근 하나둘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이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놀이 공간 역할을 하며 온라인의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랜드의 노후화 문제를 극복하고 재활성화하는(Brand Revitalization)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위 ‘다방 커피’, ‘부장님 커피’로 불리던 동서식품의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맥심은 지난 6월 합정동에 ‘모카 라디오’라는 팝업 스토어를 열어 뉴트로 감성을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기존 카페와 달리 라디오 방송국처럼 꾸며 놓고 사연과 신청곡을 받는가 하면 다양한 레시피를 적용한 맥심 커피를 판매해 다방 커피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매장은 맥심이 서울 모카책방, 제주 모카다방, 부산 모카사진관, 전주 모카우체국에 이어 오픈한 다섯 번째 팝업 스토어이다.

▲ 커피 브랜드 맥심의 팝업 스토어 ‘모카 라디오’. Ⓒ동서식품

평소 지방 강연을 잘 하지 않는 필자가 전주의 강연을 흔쾌히 수락한 것도 모카우체국에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만큼 브랜드의 ‘놀아주는 마케팅 전략’은 강력한 유인 동기가 될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하이트 진로는 지난 5월 강남과 홍대에 ‘두꺼비집’이라는 80년대 감성을 반영한 포장마차 매장을 열고 추억의 뽑기 게임, 추억의 간식 등을 선보여 큰 관심을 모았다. 또한 코코샤넬의 이색적인 오락실인 ‘코코 게임센터’, 동원참치의 ‘동감독의 원식당’ 등 소비자와 놀아주기 위한 브랜드들의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 추억의 뽑기 게임 등 뉴트로 감성을 반영해 인기를 모은 두꺼비집.
Ⓒ하이트진로(hitejinro.com)

▲ 의외성으로 화제를 일으킨 코코 게임센터. ⒸGlanceTV

 

브랜드의 놀아주기 마케팅은 소비자의 자발적 추천과 정보 확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유튜브의 콘텐츠 매니저인 케빈 알로카는 콘텐츠가 얼마나 잘 확산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의외성’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의외성은 놀라움과 재미로 구성되는데 소비자와 함께 놀아주는 브랜드가 갖춰야 할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소비자의 단순한 참여가 아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참여일 때 소비자의 반응이 더 긍정적일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쇼핑몰에서 장난감 가게인 레고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매장 입구부터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도록 꾸며 놓은 레고 매장에는 아이들로 가득차 발딛을 틈이 없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이제 경험의 양보다 질을 따지는 시대가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경험의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재미’라는 점이다. 예상치 못한 재미 있는 경험을 할 때 소비자는 그 친구를 여러 번 만나고 싶어 하고, 다른 친구에게 소개도 해 준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밸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병도 걱정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에 대한 권태이다”라고 말한다. 소비자의 권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브랜드가 소비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닌 유쾌한 친구가 되려는 관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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