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7. 10:00

로봇이 바둑을 두고 광고까지 만드는 시대. VR 안경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는 시대. 운전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알아서 달리는 시대. 매일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고, 그 기술의 능력에 무릎을 탁! 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그 속에 일상은 있다. 알파고의 첫 우승 소식보다 내 아이의 첫 옹알이가 더 놀라운 일상. VR로 보는 우주의 광활한 모습보다 눈앞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더 기분 좋은 일상. 혼자 달리는 자동차보다 마침내 혼자 달릴 수 있게 된 소년의 자전거가 더 큰 울림을 주는, 기술보다 사람이 중심인 일상. 그 일상이 2017년 칸에도 돌아왔다.

올해 칸 라이언즈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기술에 다들 지친 걸까. 기술로 향하던 트렌드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술에 맞춘 아이디어 대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복잡한 프로세스 대신 쉽고 간결한 크리에이티브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감히 올해 트렌드를 논해 보자면 ‘Human’, ‘Story’, ‘Easy’ 이 세 가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wer of Fearless

어린 소녀 하나가 겁도 없이 나타나 칸을 휩쓸었다. 4개의 그랑프리를 포함, 총 18개의 라이언즈를 거머쥔 캠페인 <Fearless Girl>. 어떻게 하면 남성 위주의 월가를 흔들 수 있을까?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세계 여성의 날 하루 전, 작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소녀상을 금융 권력의 상징인 ‘Charging Bull’ 앞에 맞서 세운 것이다.

동상 앞에 새겨진 ‘Know the power of woman in leadership, SHE makes a difference’라는 카피는 소녀상을 더 강하게 만들었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간단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메시지,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완벽한 합작품. 소녀는 칸을 휩쓸기에 충분히 강했다.

▲ <Fearless Girl> 캠페인

 

Power of Curious

왜 과속을 밥 먹듯이 할까? 아무렇지도 않게 무단횡단을 할까? 어쩌자고 운전 중에 휴대폰을 쓸까? 아무리 교통사고를 당해도 죽지 않는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있다. 이렇게 생기면 된다.

2개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호주교통안전위원회의 <Meet Graham> 캠페인에서는 그 어떤 교통사고에도 죽지 않는 ‘Graham’을 소개한다. 심장을 보호하는 여러 개의 젖꼭지와 갈비뼈, 뇌를 보호하는 두꺼운 두개골, 결코 부러지지 않는 크고 단단한 목뼈까지!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나열하며 경각심을 깨우던 기존 방식과 달리, “오직 이렇게 생겨야지만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를 보여 주는 위트 있는 방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같은 메시지도 각도를 틀면 훨씬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준 Graham에게 박수를!

▲ <Meet Graham> 캠페인

 

Power of Life

축구 선수가 공을 찬다. 수영 선수가 물속을 가르고, 높이뛰기 선수가 하늘을 난다. 드러머가 드럼을 두드린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고, 댄서들이 탭 댄스를 춘다. ‘장애’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의 일상이 모여 큰 울림으로 퍼진다. 필름 그랑프리를 수상한 4creative의 <We are the Superhumans>.

2016년 리우 패럴림픽을 맞아 제작된 이 영상에는 실제로 140여 명의 장애인이 출연한다. 영상 속 그들은 결코 동정이나 연민의 눈길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Yes I can!”을 외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일상을 유쾌한 스윙 음악과 함께 보여 줄 뿐이다. 영상 말미에 뜨는 ‘We are the superhumans’라는 카피는 장애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우리보다 강하고 놀라운 힘을 가진 ‘Super’ human 임을 깨닫게 한다.

▲ <We are the Superhumans> 캠페인

제일기획의 <The Power of Boredom> 세미나에서도 일상의 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삼시세끼>, <윤식당>, <꽃보다 할배>, 최근엔 <알쓸신잡>까지. 만드는 족족 히트를 치는 나영석 PD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가 내놓은 답은 ‘Bordom’. 경쟁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역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보여 준 그의 예능에 사람들은 힐링했고, 또 열광했다.

그는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손에 잡히는 판타지를 심어 주었는데, 나PD는 이를 ‘Affordable Fantasy’로 설명했다. 시골에 내려가 무위도식하는 <삼시세끼> 속 일상이나, 발리에 음식점을 오픈한 <윤식당> 속 일상은 ‘나도 당장 마음만 먹으면 저렇게 살 수 있다’는 판타지를 일으켰고, 이것은 곧 그의 성공 포인트로 작용했다.

▲ <The Power of Boredom> 세미나

사람들의 일상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캠페인으로는 <HEATTECH Window>도 빠질 수 없다.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히트텍과 집을 따뜻하게 해 주는 히트텍 윈도우가 만나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겨울 필수품으로 불리는 내복과 뽁뽁이의 이토록 세련된 만남이라니! 취향저격 제대로다. 몸에 착 붙는 히트텍처럼 브랜드와 타깃에 착 붙는 아이디어를 통해 한국 대표로 칸에서 사자까지 몰고 왔으니, 그야말로 히트다 히트!

▲ <HEATTECH Window> 캠페인

 

Power of Good

아이디어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여기, 좋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다 못해 아예 새로운 세상을 만든 캠페인이 있다. Grandprix for Good을 수상한 <The Refugee Nation> 캠페인이다. 2016년 처음으로 10명의 난민 출신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소속된 나라도, 흔들 국기도, 부를 국가도 없는 난민을 위해 국제기구 앰네스티와 오길비 뉴욕은 그들을 위한 나라, The Refugee Nation을 만들었다.

구명조끼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국기는 자유를 찾아 떠난 난민을 상징했고, 전 세계 6500만 난민을 하나로 모은 국가는 세계의 평화를 노래했다. 나라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라를 만든다니, 생각의 크기가 남다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늘 말하던 ‘빅’ 아이디어가 아닐까.

▲ <The Refugee Nation> 캠페인

저소득층을 위해 선불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스트 모바일(Boost Mobile)에서는 고객들의 일상에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한다. 소득이 적고 소수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투표소가 멀고 대기도 오래 한다는 것이다. 이에 부스트 모바일은 아예 자신들의 매장을 공식 투표소로 만들어 버리는 <Boost Your Voice>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람들이 손쉽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리테일 자산을 활용해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캠페인 페이지에서는 투표소 안내와 함께 참정권의 가치에 대해 실시간으로 전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이러니 캠페인 이후 투표율이 대폭 상승한 건 당연한 결과! 2개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 또한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 <Boost Your Voice> 캠페인

 

다시 Power of Idea

기술의 힘보다 생각의 힘이 상을 받는 시대가 돌아왔다. 덕분에 제일기획 세미나에서 말한 ‘Affordable Fantasy’가 내 안에도 가득 생겼다. 첨단 기술 같은 거? 몰라도 좋다. 스케일 따위 크지 않으면 어떠한가.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다시 한 번 칸에 가는 것쯤이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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