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7
글 편집실
늘 같은 길?
박재삼 시인의 어느 시(詩), 또는 어느 글에선가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매일같이 산책에 나서는 노시인은 늘 가던 그 길 위에서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이 길로 한번 가 볼까?”
시인의 풍모와 여유가 한껏 드러나는 이 말을 우리도 따라해 보자. 가령 아침 출근길에서 “오늘은 725번 버스를 한번 타 볼까?” 또는 “오늘은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가 볼까?” 하는 식으로…. 하지만 쉽지 않다. 정신을 가출시키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니, 말이야 그렇게 내뱉을 수 있다 쳐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곁눈을 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반복’의 속성 때문이다. 반복은 익숙해지고, 수월해지고, 편안해지게 만든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정형화되고, 상투화되고, 고착화되도록 만든다.
우리는 “항상 똑같아. 지겨워. 뭐 색다른 거 없을까” 하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어쩌면 일상이 똑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바꾸려 들지 않으니까. 물론 지겨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탈과 재미를 좇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파티는 끝나기 마련이고, 또 다른 파티를 찾아나선다 해도 언젠가는 그 ‘파티들’조차 지겨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과잉 자극에 서서히 지쳐갈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일상이 똑같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똑같지 않다. 어제는 봉오리 상태였던 회사 앞 화단의 배롱나무 꽃이 오늘은 활짝 피었을 수도 있고, 오늘은 지하철 옆자리에 라벤더 샴푸로 머리를 감고 나온 아가씨가 앉았지만 내일은 땀냄새 시큼한 청년이 앉을 수도 있다. 그런 게 뭐 대수냐고? 아니다.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 없는 건, 일상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둔감함, 작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옹졸함에 있다. 그래서 일상이 지루해지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마음을 다르게 먹으면 된다.
세련된 눈!
많은 사람이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좋아한다. 소재 면에서 보자면, 그의 그림은 새로울 게 없다. 바위, 장미꽃, 새, 모자, 파이프, 사과….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이다. 그런데 어랍쇼! 무거운 바위가 허공에 떠 있다. 주먹만 해야 할 사과가 산(山)만 하다. 심지어 파이프를 그려 놓고는 이게 파이프가 아니란다. 상식의 반전, 고정관념의 전복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소위 ‘문청(文靑)’이라 불리는 문학 소년과 문학 소녀들의 어떤 글들을 보면 유식해 보이는 온갖 용어가 난무하고, 단어 하나하나마다 직유와 은유가 종횡무진한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문장을 꾸며야 멋지고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그렇다. 하지만 평범한 가운데 감동과 재미를 주는 글이 정말 좋은 글이다. 가장 어려운 고수의 경지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일상을 다르게 보는 ‘세련된’ 눈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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