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12
구정우(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SNS 세대로 불리며 디지털 트렌드를 주도했던 20대가 최근 아날로그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대들이 역사책에서나 보았을 경성(京城) 시대를 재현한 사진관을 찾아 인생샷을 찍고, 불편한 필름카메라를 들고 해외 여행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불편을 감수한 아날로그적 감성
편리한 휴대폰 대신 번거롭게 턴테이블에 LP판을 걸어 직접 음색을 만드는 젊은 층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개화기풍 원피스를 입고 케이크를 먹는 10~20대의 사진도 심심찮게 SNS에 올라온다.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만의 일도 아니다. 영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젊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필름카메라의 ‘불편함’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으며, 필름카메라의 질감과 감성을 담은 스마트폰 앱들도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 색다른 것을 찾으려는 젊은 층의 이런 행위는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에 새롭다(New)가 더해져 ‘뉴트로’가 탄생한 것이다. ‘복고 패션’은 식상할지 몰라도 ‘뉴트로 패션’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신선한 매력이 충만하다. 젊음이 한껏 투여된 이 뉴트로는 의류, 식품을 넘어 패션 소품과 소형 가전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만화방, 전자오락실, 커피 한약방 등 젊은 층이 모여드는 공간에서도 이런 열풍이 감지된다. 서울대 소비자트렌드분석센터가 2019년 주목할 트렌드로 ‘필환경(必環境)’과 함께 ‘뉴트로’를 손꼽았을 정도다.
뉴트로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2012년의 영화 <건축학 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 그리고 2013년 재소환된 <응답하라 1994>와 영화 <국제시장>은 1990년대를 거쳐 산업화 시기를 재조명하면서 복고의 불씨를 당겼다. 2015년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에서는 90년대 가요계의 기억이 되살아났고, 포크 음악계의 전설을 담은 2015년 영화 <쎄시봉>도 아련한 기억을 소환했다.
“전문가들은 복고가 더는 구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신세대에게 호소하고 또 그들이 흐름을 주도하는 ‘복고의 일상화’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했다.”
Ⓒflickr.com photo by TFurban
복고의 일상화는 만물의 디지털화에 대한 반작용?
젊은 세대는 왜 뉴트로에 그들의 감성과 영혼을 불어 넣는 것일까? 빠르게 또 편리하게 돌아가는 디지털 풍경 속에서 ‘복고의 일상화’가 자리 잡은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20대가 손으로 직접 만지고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 옛것처럼 보이지만 새것과 다름없는 것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내고 있다”고 말한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품이 들더라도 사람 냄새가 나는 것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20대의 고고학적, 인류학적 감수성이 작동하고 있다.
핵심은 이들이 끄집어 내는 ‘복고’가 옛것이 아니라
전혀 색다른 종류의 질감을 갖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의미를 끌어 낼 수 있는 ‘보고(寶庫)’와 같으며 인문학적 감수성이 짙게 배어 있다는 뜻이다.
이를 역(逆)트렌드 현상으로 개념화하는 시각도 우세하다. 좀 더 거시적인 관찰인 셈인데, 디지털 발달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시각이다. 빠르고 편한 디지털 대신 느리고 불편한 아날로그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데이비드 색스의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이 간파한 대로 이제 사람들은 디지털화된 가짜 사물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진짜 사물로 관심을 옮기고 있을지 모른다.
세상이 브레이크 없이 디지털로 달려가고 있지만 레코드판, 종이, 필름, 인쇄물 등의 ‘진짜 사물’이 더 큰 기세로 살아나고, 또 우리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만물의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아날로그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진다. 디지털이 일상화돼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깊게 스며들수록 아날로그의 영역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따라서 복고의 일상화 역시 가속화될 것이다. 디지털과는 전혀 다른 논리인 아날로그만의 방식으로.
소확행과 연계된 디지털 노마드
몇 가지를 덧붙여야 한다. 첫째, 새로움을 발굴하는 20대의 고고학적, 인류학적 감수성은 ‘소확행’과 연결된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의 물적 기반은 역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청년 실업이며, 문화적 기반은 척박한 풍토에서 ‘가성비’를 찾아내려는 스마트 인류의 정체성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재킷을 펼치고 조심스레 음반을 꺼내 턴테이블에 걸고 바늘을 올려 놓는 불편함은 ‘소확행’으로 되살아난다. 강렬한 경험이다. 이것은 어쩌면 디지털과 인스턴트 시대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희망의 불빛일지 모른다.
둘째, 소통에 능하고 타 문화와의 대화에 적극적인 SNS 세대의 독특한 정신 세계에 연결돼 있다. 이들은 구한말의 풍경을, 전쟁 후의 애환을, 그리고 90년대의 힙합 문화를 하나의 새로운 기호로 인식하고 즐긴다.
“옛것과 대화하면서 이것을 새것으로 둔갑시키는
역사상 가장 스마트한 ‘디지털 노마드’의 힘이 배경에 깔려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한 가지. 우리는 초인간적 활동을 척척 해내는 로봇을 볼 때 환호하지만, 동시에 불안해한다. 로봇이 추구하는 극단의 디지털 논리, 그리고 둥근 모양, 각짐, 흰색 등으로 표상되는 로봇만의 외형은 불완전한 인간 본성과 불일치할 뿐만 아니라, 완전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동경심을 만들어 낸다. 사실 불완전하고 결핍된 인간의 본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젊은 세대에서 그 모습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날 뿐이다.
그 이유는 ‘소확행’이라는 피할 수 없지만 강력한 경험, 그리고 SNS를 통해 단련된 문화적 기술과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이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아날로그 컨택을 축복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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