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9. 10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최근 취향 공유와 지적 사교를 목적으로 한 살롱 문화가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등 다양한 취향을 가진 이들을 새로운 공동체로 끌어모으고 있는 살롱 문화의 부활.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인문학과 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 취향별로 소모임을 갖기도 하고 세미나나 인문학 강좌를 열며, 때로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는 ‘문래당 1063’, 음식․글쓰기․영화․음악․와인 등등 저마다의 취향으로 모임을 갖는 ‘문토’, “운동은 같이 하는 것”이라며 온․오프라인 운동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버핏서울’, 책을 매개로 모인 이들의 독서 공동체 ‘트레바리’…. 최근 살롱이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로 번져가고 있다.
이처럼 살롱 문화가 ‘힙하게’ 뜨고 있는 건,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이 모여 뭔가를 함께 하고 때론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생산적인’ 특징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네 모임이란 대부분 술자리 같은 소비 문화로 채워져 있었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 피어나고 있는 살롱 문화는 취향을 공유하는 소모임으로 만나 인문학이나 취미를 함께 나누며 이를 통해 강좌나 나아가 유튜브 방송 콘텐츠까지 만드는 등 생산적 성격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문래당 1063에서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팟캐스트 ‘마마지: 마이들의 마이너한 지식 채굴소’나 인문학 유튜브 채널 ‘깜냥방송’ 같은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더라도 취향을 함께 나누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 자체가 주는 ‘생산성’은 분명히 있다. 문토의 ‘야단법석 글방’이나 ‘드로잉 살롱’ 같은 소모임을 보면 함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그 행위만큼 그걸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참가자들에게 더 유익한 경험을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버핏서울처럼 운동이라는 확실한 목적이 있는 경우는 친목과 건강을 모두 챙겨 준다는 이점이 있고 트레바리 같은 독서 모임은 혼자는 어쩐지 쉽지 않은 ‘책 읽기’를 함께 하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서울 문래동에 위치한 ‘문래당 1063’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오픈 동아리방’을 표방하고 있다. Ⓒ 홈페이지 캡처(moonraedang.net)
▲ 시즌제 멤버십 형태로 운영되며, 격주로 모임을 갖는 소셜 살롱 ‘문토’.
Ⓒ 홈페이지 캡처(munto.kr)
살롱 문화가 대안적 공동체로 주목되는 건 현재 추구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수평적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지금의 중년들에게 공동체란 ‘인맥’과 동의어처럼 여겨지곤 했다. 누군가를 만나면 어느 학교 몇 학번이냐고 먼저 묻고 직장은 어디며 고향은 어디인지 묻던 시절, 그렇게 만들어지는 공동체는 ‘수직적인 서열’을 당연히 갖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 공동체 서열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바가 됐다. 특히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생겨난 ‘개인주의 문화’는 무조건적인 공동체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가족주의 문화를 대치하면서 대안적 공동체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때문에 취향이 중요해졌다. 학교나 직장, 지역 같은 ‘연줄’이 아닌 같은 취향으로 만난 이들은 지극히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 누구나 그 자리에 함께하면 똑같이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의견을 내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집단에 매몰됐던 개인들의 취향과 개성, 생각들은 이러한 공동체를 통해 소통될 수 있고 나아가 함께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사실 온라인 사회가 가진 불안감은 대면 접촉이 극도로 줄어들어 개인들이 파편화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결핍은 그만큼의 욕망을 만들어 낸다고 했던가. 살롱 문화는 개인화돼 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체에 대한 갈증을 매개해줌으로써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살롱들은 대개 일정한 참가비를 내고 자신이 원하는 취향의 모임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지만, 그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문토나 문래당이나 트레바리 같은 경우 소모임 공간을 제공하고 그곳의 장비를 활용하거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매개의 장’을 제공하지만, 회원제 사교 클럽 서비스를 추구하는 ‘취향관’ 같은 살롱은 사교 모임이나 파티를 하는 화려한 공간을 제공하는 등 그 성격에 따라 매개 공간의 특징에 차이가 있다.
▲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취향관’은 2층 양옥집을 개조해
유럽의 살롱 문화를 재해석한 교류 공간을 선보인다.
Ⓒ project-chwihyang.com
살롱은 실제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특징 때문에 기존 공간을 활용하는 산업들과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즉 인문학 모임이나 책을 매개로 하는 모임의 경우 출판 시장과 무관할 수가 없다. 여기서 함께 읽는 책들이나 이들이 모임을 통해 만들어 내기도 하는 콘텐츠들은 출판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요즘처럼 서점들이 점점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조금씩 관심을 받고 있는 동네 서점들의 경우 여러모로 살롱과 유사한 형태가 돼 가는 경향이 있다. 동네 서점들은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독서 모임이거나 저자와의 대화 같은 형태로 이어지면서 정기화되면 그 역시 또 하나의 살롱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살롱 문화와 동네 서점의 만남은 ‘개인 출판’ 같은 새로운 출판 트렌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살롱이 주로 차를 마시거나 때론 술을 함께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은 기존 카페와 음식점의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창업자들과 차별성을 만들기 위해 카페와 음식점들 또한 살롱 문화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단순히 차와 술과 음식을 팔던 카페나 음식점들이 취향 공동체가 찾는 아지트로 변신하는 것이다. 특히 와인처럼 확실한 취향은 와인 시식회 같은 살롱 문화로의 변신이 일찌감치 와인숍이나 와인 전문점 등에서 이뤄진 바 있다.
이처럼 살롱 문화는 기존 산업에 문화와 공동체의 향기를 더함으로써 경쟁적인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의도 또한 갖고 있다. 즉 모두가 같은 색깔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취향들로 공간을 채색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롱 문화는 하나의 취향이 유행처럼 번지며 모두를 끌어 모으는 집단적인 문화의 대안으로도 제시된다. 즉 한두 공간으로 모여들곤 하던 사람들을 지역별로, 취향별로 분산시키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살롱 문화 속에는 수직적 관계나 시스템을 수평적으로 바꾸려는 갈망이 내재해 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우리 사회 시스템을 좀 더 수평적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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