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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니까!

요즘 복고풍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라고 하지요. 영화 <밀정>의 연계순이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와 고애신이 된 듯 말이죠. 복고 사진이 비단 젊은 연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소 연로한 아빠 ‘모던 보이’와 다소 나이 든 엄마 ‘모던 걸’이 자녀들과 함께 시크한 포즈를 취하며 가족 사진을 찍습니다. 예전에는 으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의자에 앉은 부모 뒤로 자식들이 빙 둘러서서 가족 사진을 찍기 마련이었지요.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새로운 포맷의 가족 사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일제강점기 경성 풍경을 재현한 듯한 이런 사진에 환호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시절의 정서를 유추해 낼 수 있는 40~50대가 아닙니다. “엄마 어릴 적에는”으로 시작되는 얘기는 제법 들었을지 몰라도 “할머니 어릴 적에는”은 그다지 들어본 적이 없는, 그 시대와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20대입니다. 20대가 40~50대보다 ‘머나먼 과거’에 더 반색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거리’의 정도가 ‘새로움’을 포착하기에 딱 알맞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40~50대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에는 사진관이 들어선 동네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정기적으로 동네에 사진사가 찾아오곤 했는데, 이들의 리어커에는 이발소 그림 같은 배경 화면을 비롯해 큼지막한 조화가 꽂혀 있는 화병, 가짜 조랑말 따위의 소품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일종의 ‘찾아가는 사진관’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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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위한 시테크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다.” 한번쯤 들어보셨을 얘기인데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설마 발음도 어려운 단어를 ‘가장’ 먼저 배우기야 하려고요. 하지만 외국인들이 이 단어를 한국의 문화적 특징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건 분명한 듯합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인이 느긋하지 못하고 여유가 없다는 증거로 ‘빨리빨리’ 문화를 들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성향이 원래 그렇다는 거지요.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몸과 마음이, 그리고 터전과 산하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여유작작하게 모든 걸 ‘재건’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 ‘빨리빨리’는 한국인의 DNA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움켜쥔 생존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제 속도의 문제는 비단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게 됐습니다. 인터넷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친 후 검색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못 견뎌하고, 온라인 쇼핑으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한 후 재깍 배송되지 않으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 게 비단 한국인만일까요? 부지하세월을 견디지 못하는 건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디지털 시대는 이렇게 전 세계인들에게 ‘속도에 대한 기대 심리’라는 공통분모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테크’라는 말, 들어보셨겠지요? 아주 오래 전에 등장한 개념이라 요즘 젊은 세대는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과 재테크를 합한 이 단어를 거칠게 정의하면, 시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해서 개인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의미입니다. 시테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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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페르소나, 자기만의 방

생활 수준이 높아진 데다가 한 자녀 가정이 많은 요즘엔 내 방이 없는 아이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내 방은커녕 내 책상조차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상 위 책꽂이에 언니의 참고서와 동생의 그림책이 뒤죽박죽 꽂혀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지요. 때로는 서랍 깊숙이 숨겨둔 일기장이 형제자매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시절 아이들에겐 ‘내 방’ 마련이 부모들의 ‘내 집’ 마련만큼이나 절실한 꿈이었습니다. 내 방이 없는 설움…. 내 방만 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지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버지니아 울프는 평론을 쓰는 한편 실험적인 소설도 여러 편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시대가 변하면 진실을 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이나 『세월』도 유명하지만, 버지니아 울프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란 에세이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일컬어지지만, 그녀가 했던 말을 상기하면 페미니즘을 넘어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한 대학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토대로 저술한 작품인데요, 그때 울프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는 얘기는 리얼리티에 직면해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는 뜻이다.” 이 책이 발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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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시점’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헤아려라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1인칭 대명사에는 ‘나’와 ‘저’가 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대명사로는 ‘본인’이 있죠. 하지만 일상적 대화에서 이 단어가 1인칭으로 등장하는 빈도는 매우 낮습니다. 그 외에 여(余), 오(吾), 과인, 짐, 소인 등이 1인칭 대명사입니다. ‘여’나 ‘오’는 지금은 쓰지 않는 죽은말이고, 과인과 짐, 소인은 신분 사회에서 쓰던 말이니 현대의 일상어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요즘에도 농담조로 말할 때는 이런 낱말들을 가끔 쓰곤 하지만…. 이렇게 보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1인칭 대명사의 종류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반면에 너, 자네, 그대, 당신, 귀하, 어르신 등 2인칭 대명사는 그보다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오랫동안 나 자신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2인칭 대명사가 더 많은 게 아닐까요?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가 않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바로 ‘나’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소설의 시점 기억하시나요? 화자가 소설 속에 등장해 이야기를 들려주면 1인칭 시점이고, 등장하지 않으면 3인칭 시점이라고 배웠죠. 1인칭 시점은 다시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으로 나뉩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내가 주인공인 만큼 내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은 화자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해 서술하는 것이니 인물들의 내면을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소설에서 시점은 저마다 목적과 효과가 다릅니다. 어떤 시점을 택하든 그거야 작가 마음이겠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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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방법

우울할 때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만들어 냈을 테지만, 어느 작품이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여러 작품 중 『공중 그네』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책입니다.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을 때는 십중팔구 전문적 ‘해석’과 ‘처방’을 기대하겠지요. 이라부를 찾아온 환자들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라부는 환자를 결박해 다짜고짜 비타민 주사부터 놓는 막무가내 의사입니다. 환자가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놔도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를 찾아온 환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위로를 받고, 결국 마음의 병도 치료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라부는 그럴싸한 처방전 대신 환자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우회 전략을 택합니다. 나무만 보느라 숲을 미처 보지 못했던 환자들이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숲의 진짜 문제를 깨닫게 만드는 거지요. 사실 짧은 대화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묘법’을 제시해 주는 의사가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요? 아무리 유능한 의사도 ‘실마리’를 줄 수 있을 뿐 진정한 위로는 스스로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가능한 게 아닐까요.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실마리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효과적으로 던지느냐가 관건일 겁니다. 『Cheil』 매거진은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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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연결하라

지난달 칸 라이언즈가 열렸습니다. 올해 칸 라이언즈의 수상작들을 두루 살피다 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게있습니다. 사회적, 공익적 성격을 지닌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젠더, 장애인, 장기 기증, 환경….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고, 부조리와 불편함을 개선하며,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력들이 돋보였죠. 마치 칸 라이언즈가 마블의 새로운 어벤져스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What Creativity Can Do?’라는 세미나에서 구글의 연사들은 앞으로 공룡에게 생명 불어넣기, 국가 재건 돕기, 난민 돕기 등등에 크리에이티비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의 지속성과 풍요로움과 하모니를 위해 보탬이 되겠다는 얘기죠. 칸 라이언즈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어벤져스가 되려나 봅니다. 물론 올해 갑자기 이런 경향이 나타난 건 아닙니다. 예전부터 있어 왔고, 지속적으로 시도돼 왔습니다. 올해 유난히 이런 어젠다가 부각된 데는 어쩌면 테크놀로지와 크리에이티브가 더 긴밀히 연결됐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손만 살짝 잡았던 관계에서 스킨십이 본격적으로 무르익는 단계로 발전한 셈이라고 할까요. 디지털, 그리고 테크놀로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찬란히 빛나는 ‘별’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크고 작은 굴곡들을 연결하며 밤하늘 전체를 환하게 만드는 ‘별자리’가 돼 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칸은 폐막 후 올해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습니다. “행동과 사고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보여 줬고, 성장을 주도하고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