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또 다른 페르소나, 자기만의 방

생활 수준이 높아진 데다가 한 자녀 가정이 많은 요즘엔 내 방이 없는 아이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내 방은커녕 내 책상조차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상 위 책꽂이에 언니의 참고서와 동생의 그림책이 뒤죽박죽 꽂혀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지요. 때로는 서랍 깊숙이 숨겨둔 일기장이 형제자매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시절 아이들에겐 ‘내 방’ 마련이 부모들의 ‘내 집’ 마련만큼이나 절실한 꿈이었습니다. 내 방이 없는 설움…. 내 방만 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지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버지니아 울프는 평론을 쓰는 한편 실험적인 소설도 여러 편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시대가 변하면 진실을 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이나 『세월』도 유명하지만, 버지니아 울프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란 에세이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일컬어지지만, 그녀가 했던 말을 상기하면 페미니즘을 넘어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한 대학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토대로 저술한 작품인데요, 그때 울프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는 얘기는 리얼리티에 직면해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는 뜻이다.” 이 책이 발표된…

Intro

‘전지적 시점’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헤아려라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1인칭 대명사에는 ‘나’와 ‘저’가 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대명사로는 ‘본인’이 있죠. 하지만 일상적 대화에서 이 단어가 1인칭으로 등장하는 빈도는 매우 낮습니다. 그 외에 여(余), 오(吾), 과인, 짐, 소인 등이 1인칭 대명사입니다. ‘여’나 ‘오’는 지금은 쓰지 않는 죽은말이고, 과인과 짐, 소인은 신분 사회에서 쓰던 말이니 현대의 일상어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요즘에도 농담조로 말할 때는 이런 낱말들을 가끔 쓰곤 하지만…. 이렇게 보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1인칭 대명사의 종류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반면에 너, 자네, 그대, 당신, 귀하, 어르신 등 2인칭 대명사는 그보다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오랫동안 나 자신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2인칭 대명사가 더 많은 게 아닐까요?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가 않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바로 ‘나’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소설의 시점 기억하시나요? 화자가 소설 속에 등장해 이야기를 들려주면 1인칭 시점이고, 등장하지 않으면 3인칭 시점이라고 배웠죠. 1인칭 시점은 다시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으로 나뉩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내가 주인공인 만큼 내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은 화자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해 서술하는 것이니 인물들의 내면을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소설에서 시점은 저마다 목적과 효과가 다릅니다. 어떤 시점을 택하든 그거야 작가 마음이겠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Intro

위로의 방법

우울할 때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만들어 냈을 테지만, 어느 작품이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여러 작품 중 『공중 그네』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책입니다.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을 때는 십중팔구 전문적 ‘해석’과 ‘처방’을 기대하겠지요. 이라부를 찾아온 환자들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라부는 환자를 결박해 다짜고짜 비타민 주사부터 놓는 막무가내 의사입니다. 환자가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놔도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를 찾아온 환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위로를 받고, 결국 마음의 병도 치료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라부는 그럴싸한 처방전 대신 환자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우회 전략을 택합니다. 나무만 보느라 숲을 미처 보지 못했던 환자들이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숲의 진짜 문제를 깨닫게 만드는 거지요. 사실 짧은 대화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묘법’을 제시해 주는 의사가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요? 아무리 유능한 의사도 ‘실마리’를 줄 수 있을 뿐 진정한 위로는 스스로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가능한 게 아닐까요.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실마리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효과적으로 던지느냐가 관건일 겁니다. 『Cheil』 매거진은 지난…

Intro

세상을 연결하라

지난달 칸 라이언즈가 열렸습니다. 올해 칸 라이언즈의 수상작들을 두루 살피다 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게있습니다. 사회적, 공익적 성격을 지닌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젠더, 장애인, 장기 기증, 환경….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고, 부조리와 불편함을 개선하며,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력들이 돋보였죠. 마치 칸 라이언즈가 마블의 새로운 어벤져스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What Creativity Can Do?’라는 세미나에서 구글의 연사들은 앞으로 공룡에게 생명 불어넣기, 국가 재건 돕기, 난민 돕기 등등에 크리에이티비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의 지속성과 풍요로움과 하모니를 위해 보탬이 되겠다는 얘기죠. 칸 라이언즈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어벤져스가 되려나 봅니다. 물론 올해 갑자기 이런 경향이 나타난 건 아닙니다. 예전부터 있어 왔고, 지속적으로 시도돼 왔습니다. 올해 유난히 이런 어젠다가 부각된 데는 어쩌면 테크놀로지와 크리에이티브가 더 긴밀히 연결됐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손만 살짝 잡았던 관계에서 스킨십이 본격적으로 무르익는 단계로 발전한 셈이라고 할까요. 디지털, 그리고 테크놀로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찬란히 빛나는 ‘별’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크고 작은 굴곡들을 연결하며 밤하늘 전체를 환하게 만드는 ‘별자리’가 돼 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칸은 폐막 후 올해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습니다. “행동과 사고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보여 줬고, 성장을 주도하고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