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12
김용섭(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트렌드 분석가)
얼마 전부터 영 레트로(Young Retro)를 줄인 영트로, 뉴 레트로(New Retro)를 줄인 뉴트로란 용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런데 젊음 혹은 새로움이란 단어가 과연 복고와 어울리는 조합일까? 상반된 의미를 가진 단어의 결합이 가능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에 의한 레트로의 재해석 덕분이다.
촌스러움이 힙할 수 있는 시대
요즘 1970~90년대에 대한 복고가 활발한데, 사실 밀레니얼 세대는 겨우 태어났거나 아직 태어나기도 전의 시대가 소환되고 있다. 그들이 추억하고 향수를 느낄 시대가 아니다. 그러니 기성 세대에겐 과거의 복기이지만,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무엇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1980~90년대 유행했던 코듀로이, 일명 골덴 패션이 다시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의 벨벳이라고 불리던 코듀로이 소재는 실용적 방한 소재이지만, 패션의 측면에선 매우 촌스러웠다. 그렇게 소멸됐던 코듀로이 패션이 부활해, 패션 피플들의 아이템이 되고 있다. 당시를 풍미했던 ‘청청’ 패션도 2000년대 들어 촌스럽게 여겨져 자취를 감췄는데, 최근 몇 년 새 다시 부활했다. 마찬가지로 호피 패션도 2030세대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로고를 크게 새기는 빅로고 패션도 패션 브랜드들이 자주 선보이는 아이템이 됐다.
뿐만 아니라 하이웨이스트 청바지, 농구화 등 복고 아이템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들 모두 과거에 사랑받던 인기 제품을 현재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제품들이다. 아예 제품에 특정 연도를 새기는 경우도 많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1996년과 1997년에 만들었던 청바지 디자인을 재해석해 출시하면서 제품명을 ‘1996’, ‘1997’로 했다. 노스페이스도 1996년 히트했던 다운재킷을 2018년 버전으로 만들며 ‘1996 레트로 눕시 재킷’이란 이름으로 팔고 있다.
그런가 하면 휠라는 1999년에 인기를 끌었던 보비어소러스 러닝화를 재해석해 ‘보비어소러스 99’라는 이름으로 재출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10년대에 브랜드 노후화로 어려움을 겪었던
휠라라는 브랜드 자체가 이를 통해 부활한 점이다.”
Ⓒ fila.co.kr
미국 슈츠 전문 미디어 ‘풋웨어뉴스’에서 올해의 신발로 뽑힌 디스럽터2는 1997년 출시된 디스럽터를 재현해 전 세계적 인기를 끌며 휠라 부활의 일등공신이 됐다.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성과 맞물리다
뉴트로 열풍으로 과거의 한물간 패션, 즉 지금 시점으로 보면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스타일이 오히려 힙하고 멋진 스타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현재 스타일에 대한 대비 효과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것도 흔해지면 식상해지고 가치가 떨어진다. 최신 스타일 대신 오히려 과거의 낡은 스타일이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에겐 개성과 희소성, 다양성이 중요하며
남들과 유사한 스타일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경향이 크다.”
물론 앞장서 레트로를 소비하던 트렌드세터들이 이들과 차별된 또 다른 스타일로 옮겨갈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한동안 다수 대중들은 레트로를 적극 소비할 것이다. 그러니 2018년 거세진 뉴트로, 영트로 열풍은 2019까진 충분히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패션 유행은 돌고 도니까 옷장에 있던 엄마 옷을 딸이 입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패션계가 복고를 다룰 때는 단순히 복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빈티지와 레트로, 강력한 마케팅 트렌드
1980~90년대에는 음료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로고를 새긴 유리컵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집집마다 그런 컵 몇 개씩은 있었을 것이다. 촌스럽다고 버려졌을 그런 사은품 컵이 지금은 빈티지컵, 레트로컵이라 불리며 인기 아이템이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빙그레는 1990년대 초반에 사용하던 로고가 새겨진 유리컵을 다시 제작해 사은품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오리온은 편집 매장 비이커와 함께 초코파이가 새겨진 빈티지 컵을 제작했다.
한때는 낡고 촌스럽다며 외면하고 버렸던 것들이 이젠 다시 멋지고 힙한 것이 됐다. 과거엔 와인에서만 빈티지라는 말을 썼지만, 이젠 모든 오래된 물건에 쓸 정도다. 빈티지 시계, 빈티지 자동차, 빈티지 가구, 빈티지 오디오 등 고가의 빈티지부터 일상 생활용품 모든 것에서도 빈티지는 매력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까지 빈티지와 레트로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
앞으로 관련 마케팅이나 관련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을 예측하게 한다.”
Ⓒ Binggrae / ssfshop.com
1950~70년대 빈티지 시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점점 빈티지 시계의 가격대는 높아져 가고 있으며, 시마스터 70주년 기념으로 복각판을 낸 오메가를 비롯해 스위스 유명 시계 브랜드에서 과거 시계의 복각판을 자꾸 만들어 내는 것도 이런 현상과 연관된다. 또한 빈티지카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포르쉐는 70년 전 1세대 모델을 한정판으로 다시 팔기도 했다.
에버랜드가 1020세대에게 레트로를 보여 준 까닭은?
에버랜드는 2018년 11월 뉴트로 트렌드를 적용해 한 달간 축제를 열었다. 1020세대들이 많이 가는 놀이공원에서 1960~70년대 복고 감성을 구현한 것이다. 이는 레트로가 얼마나 힙한 트렌드가 됐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제 레트로는 밀레니얼 세대는 물론이고 Z세대까지도 탐닉하는 중이다. 에버랜드는 뉴트로 콘셉트를 위해 빈티지 자동차를 배치하고, 그 앞에 선 핀업걸이 인사를 하고, 롤러스케이트장을 만들고, 미러볼을 비롯한 레트로 감성의 장식과 조형물도 활용하고, 레트로 의상을 입은 DJ도 준비했다.
놀이 기구 이름도 과거 식으로 표기했는데, 가령 범퍼카는 ‘밤파카’로 표기했다. 전문 헤어 디자이너들이 현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레트로 헤어 스타일링법을 알려주고 선착순으로 포마드, 핀업걸 등의 레트로 헤어스타일을 즉석에서 무료로 연출해 줬다.
이제 레트로는 중장년층에게 향수와 추억을 파는 게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위한 새로운 소비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핵심은 과거가 아닌 새로움이자 희소함에 있다.”
Ⓒ witheverland.com
이제 모두에게 감성과 취향이 중요한 소비 기준이 됐고 앞으로도 레트로는 뉴트로, 영트로의 이름을 달고 더더욱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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