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가 들여다본 캠페인
제일기획은 직급 대신 ‘프로(Pro)’라는 호칭을 사용하는데요. 프로의 어원은 스페인어 ‘프로페시오(Professio)’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선언하는 고백’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어떤 일에 대해 어디서나 ‘전문가’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을 프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이 좋아서 하는 ‘아마추어(Amateur)’와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죠.
그렇다면 전문가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요? 한 분야에 대해서 크게 혹은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음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한 구절인데요.
이 구절을 통해 그냥 ‘보는(視) 것’과 ‘들여다보는(見) 것’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고, 시간을 들여 관찰하는 것을 들여다본다고 하죠. 그럼 지금부터 ‘캠페인’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예전에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결국 내린 결론은 ‘캠페인을 만드는 사람’. 광고주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캠페인으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때부터 캠페인이란 과연 무엇일지 들여다봤습니다.
제가 들여다본 캠페인은 소통과 참여 그리고 변화가 꼭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셋 중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캠페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엇갈리게 놓으면 식사 중, 일렬로 놓으면 식사를 다 했다는 제스처이자 테이블 매너죠. 그런데 폴란드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했습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십자가 형태로 놓으면 결식아동에게 기부 의사가 있음을 표현하는 건데요. 이 캠페인은 제일기획 폴란드법인과 폴란드 적십자사가 진행한 ‘Very Good Manners’입니다.
이렇게 소통과 참여 그리고 변화가 이뤄진 이 캠페인은 2014 칸 국제광고제에서 은상 1개와 동상 1개를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WWF 어스아워 캠페인을 통해 소통과 참여 그리고 변화가 이뤄진 좋은 캠페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봅시다.
좋은 캠페인을 꿈꾸며 어스아워 캠페인 시작!
어스아워는 2007년, 시드니에서 시작한 환경 운동 캠페인인데요.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한 시간 동안 불을 끄는 거죠. 작년 겨울부터 제일기획은 WWF 코리아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이 ‘어스아워 2017’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요.
“불을 끄면 지구를 살리고 생명을 보호할 수 있어요”란 다소 뻔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엇을 알려주기보다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고 깨닫는 체험형 캠페인을 생각했죠. 불 끄는 것의 ‘효과’를 알려주는 것 이상의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 경험으로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캠페인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첫 번째 안을 WWF 코리아에 제안했습니다.
어스아워 캠페인 A안
높은 전등 위에 조그마한 얼음이 걸려있고 간신히 발을 디디고 서 있는 북극곰이 보입니다. 전등이 계속 켜져 있으면 얼음이 녹고 북극곰이 서 있을 곳이 없어지겠죠? 우리는 사람들에게 불을 끄고 지구를 구할 것을 요청합니다. 사람들은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스위치가 너무 높이 달려있어 불 끄기에 실패하죠.
방을 나서는 순간,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달린 또 다른 스위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행히 당신 집의 스위치는 불 끄기 쉬운 곳에 달려있고, 지구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는 메시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면 야광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죠. 어떤가요? 이 제안은 WWF 코리아도 좋아했지만 아쉽게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빛을 차단할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의 전시공간을 대관해야 하고, 공간에 여러 가지 요소를 구현해야 하는데 일정과 예산이 맞지 않았죠. 그래서 우린 또 다른 안을 제안하게 됐습니다.
어스아워 캠페인 B안
A안을 다시 돌아보며 ‘과연, 이 캠페인의 핵심은 뭘까?’ 생각해봤는데요.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불을 끄면 야광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환경이 바뀌는 것?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결과에 해당하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더 중요한 핵심은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는 행위’죠. 우리는 B안을 시작하며 ‘스위치’에 좀 더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환한 낮, 거리 한복판의 가로등이 켜져 있습니다. 그 가로등에는 커다란 스위치가 달려있죠. 스위치를 본 사람들은 불을 끄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A안의 스위치와 마찬가지로 너무 높이 달린 게 문제. 몇몇 사람은 목마를 타거나 여러 방법으로 불 끄기를 시도할 거예요.
우린 1차적으로 스위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제고하고 불 끄기라는 행위를 경험하게 하는 이 프로모션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진행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프로모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어스아워를 소개하면서 높이 달린 스위치보다 훨씬 끄기 쉬운 일반 스위치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꺼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죠.
바보 같은 제안으로 이끌어낸 소통과 참여 그리고 변화
WWF 코리아와 의논 끝에 A안의 문제를 보완하고 스위치라는 핵심에 집중한 B안으로 캠페인 진행이 결정됐습니다. 우리는 실제 청계광장에서 프로모션을 한 후, 캠페인 2차 스텝으로 다음과 같은 바이럴 영상을 제작해 페이스북에 공개했죠. 스위치를 높이 달아보자는 황당하고 바보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 ‘바보 같은 제안’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영상 공개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 약 57만 뷰를 달성했죠. 당연하게 생각했던 스위치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됐고, 사람들과 각 언론사가 주목했습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3월 25일 어스아워 행사에 동참했고, 예년보다 많은 개인의 참여가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결국 이번 캠페인으로 소통과 참여 그리고 변화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죠.^^
4월 제일세미나를 마치며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좋은 결과와 반응, 평가에 힘입어 <바보 같은 제안>을 칸 국제광고제에 출품했는데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6월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여러분도 6월, 칸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올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려요.
스위치에 집중한 이번 캠페인에 이어 WWF 코리아와 내년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요. 이번 캠페인에서 어떤 점을 바꾸고 어떤 점을 보완해 다음 캠페인을 이어갈 건지가 중요하겠죠? 지속 가능한 캠페인이란 전 편을 의미 있게 하는 후속 캠페인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또 어떤 캠페인으로 내년 어스아워 시즌, 여러분과 소통하고 여러분의 참여와 변화를 이끌어낼지 기대해주세요. 지금까지 남재욱 프로의 4월 제일세미나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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