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3. 15:09

본래 영화나 드라마, 웹툰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의 게임화는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으로 일찍부터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본격화되는 게임화의 경향을 들여다보면 콘텐츠 산업 성패의 관건으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세계관’이 어른거린다.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매트릭스> 같은 작품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들로 여러 에피소드 시리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모두 게임화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PC 게임부터 콘솔 게임까지 집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2000년대 초반 등장했던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전략으로 성공한 영화들은 게임업계가 눈독 들이는 분야가 됐다.

특히 마블의 다양한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만들어 낸 이른바 ‘마블 유니버스’는 무수히 많은 게임들을 쏟아냈다. 이즈음 등장한 용어가 ‘세계관’이다. 하나로 끝나는 작품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작품들로 변주될 수 있는 세계관의 창출. 그것은 <스타워즈>나 <해리포터>에서부터 마블 유니버스의 작품들이 여러 시리즈로 탄생하게 해 주는 힘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관은 보다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의 변주가 요구되는 게임화에도 중요한 관건이 됐다.

 

▲ <해리 포터>를 원작으로 하는 RPG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Hogwart legacy)’

최근 들어 게임화되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분야들 중 드라마가 급부상하게 된 건 이러한 세계관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가 급부상하면서 보다 긴 호흡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저변이 넓혀진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보다 드라마의 게임화를 본격화시킨 건 영화보다 더 긴 호흡으로 그려나가는 드라마의 세계가 더 디테일한 세계관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좌의 게임>을 모바일 전략 게임으로 만들어 낸 <왕좌의 게임: 윈터 이즈 커밍>은 킹스랜드의 철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7왕국의 영토 전쟁이 그 세계관으로 제시되고, 그 위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유저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스토리를 그려나갈 수 있게 설계됐다. 좀비 장르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워킹데드> 역시 마찬가지다. 좀비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생존자들이 벌이는 사투와 성장의 서사는 고스란히 게임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우리에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르가 게임으로 만들어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도 성공한 작품들의 게임화는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존재했다. <야인시대>,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 <주몽> 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중에서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대장금>은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어져 서비스 시작 17일 만에 3만 2천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성공한 바 있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건 이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와도 관련이 있었다. 주인공 캐릭터 장금이가 매회 미션을 부여받고 그것을 클리어하면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토리 라인이 모바일 게임의 구조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 드라마 <대장금>을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
ⓒ 라이온로직스 홈페이지 캡처(lionlogics.com)

최근 들어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게임화는 드라마, 웹툰, 나아가 K-pop으로까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여기서도 주목받는 분야는 역시 드라마다.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한 K-좀비 열풍을 만들어 낸 김은희 작가의 <킹덤>은 게임 제작사인 액션 스퀘어와 협업해 모바일 액션 단독 게임으로 개발 중이다.

드라마의 게임화가 가장 손쉽게 이뤄지는 게임 장르는 ‘스토리 게임’이다. 제시된 캐릭터와 세계관 속에서 유저의 선택에 의해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스토리를 써나가는 스토리 게임 분야에서는 <킹덤>은 물론이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SKY 캐슬> 또한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스토리 게임 장르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이 존재하면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넷마블이 출시한 <BTS 유니버스 스토리>는 유저가 참여하는 ‘BTS 키우기’를 콘셉트로 하는 스토리 게임으로 K-pop 같은 영역 또한 게임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 인기 드라마 <SKY 캐슬>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 게임

<마음의 소리>나 <덴마>처럼 게임화가 일찍부터 진행됐던 웹툰은 그 장르적 특성상 게임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게임으로 만들어진 네이버 인기 웹툰 <신의 탑>의 경우, RPG 게임 던전의 개념을 탑의 개념으로 풀어냄으로써 게임의 세계관을 가져와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웹툰의 게임화는 원작 마니아들을 게임 유저로 끌어올 수 있는 데다, 게임을 통해 원작 웹툰의 브랜드 가치 또한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 주목하는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웹툰과 게임이라는 장르는 모두 스토리와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야기나 결말의 자유로움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드라마나 영화, 웹툰은 저마다 정해진 주인공들이 스토리를 이어가다가 하나의 결말에 도달하지만, 게임은 주인공도 스토리도 결말도 유저의 선택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근 들어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장르에서도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이른바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처럼 게임이 우리네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나아가 콘텐츠 소비에 있어서도 게임 같은 자유도나 능동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2018년에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영화 <블랙미러> 특별판 ‘밴더스내치’는 중간중간에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해 마치 스토리 게임 같은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트레일러 영상

이제 드라마나 영화, 웹툰 같은 장르들의 게임화는 실제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시리즈로 구성되는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주변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스핀오프, 인물의 전사를 그려내는 프리퀄이나 후속편으로 이어지는 시퀄 등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하나의 닫힌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이 더 거대한 세계관에 포함된 하나의 이야기, 일부라는 걸 드러낸다.

결국 이러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세계관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게임화의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게임화의 관건 또한 분명해진다. 콘텐츠들이 가진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구축해 내는 매력적인 세계관이 바로 그것이다.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대중문화를 통해 시대성을 모색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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