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6. 15:07

부모들이 아이들의 꿈을 키워 주기 위해 읽히는 것이 위인 전기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삶과 업적을 통해 교훈을 얻고, 롤모델 삼아 훌륭히 성장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위인 전기를 잘 읽지 않는다. 사실 위인전이 재미없기는 어른도 마찬가지. 누군가의 꿈과 성공을 기록한 위인전이 재미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위인전을 사주실 때는 부모님께서 미리 잘 읽어 보세요.”

나는 많은 학부모들에게 이런 조언을 자주 한다. 왜일까? 위인전은 대부분 그들이 달성한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는 데만 열중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에 있다.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열정’에 대한 이야기가 고작인 위인전이 너무도 많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오히려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까? “아, 나는 아무리 해도 이런 사람처럼 되기는 어렵겠구나!” 사실 이건 나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일례로 에디슨 전기를 보면, 첫 페이지에서 어린 에디슨이 알을 품고 두 번째 페이지에서 객차에 불을 낸 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신기한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 노인 에디슨이 갑자기 등장한다. 참으로 허탈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이다. 이런 결과적 위대함으로부터는 아무런 정보나 실마리를 얻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도, 세종대왕도 예외가 없다.

그런데 어른이 될수록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위인전에 갇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가 말이지…” 또는 “내가 왕년에…” 하면서 셀프 위인전을 들려줄 때마다 자녀나 후배들은 속으로 이런 단어를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꼰대’.

 

어른들이 재미없는 위인전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기술(記述)과 설명(說明)의 차이를 구분하고 제때 사용하라’는 것이다. 일단 기술과 설명의 차이를 알아보자. 기술은 ‘대상이나 과정의 내용과 특징을 있는 그대로 열거하거나 기록해 서술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설명이란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방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또는 그런 말’을 의미한다.

이 둘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있는 그대로’와 ‘상대방이 잘 알 수 있도록’에 그 핵심이 있다. 즉, 기술은 정확해야 하며 최대한 풍부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임의로 각색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설명의 의무는 다르다. 설명은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내용의 경중에 따라 어떤 항목은 상대적으로 늘려 강조하거나 반대로 좀 누락시켜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즉, 각색이 허용된다.

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세상의 수많은 일들이 성공은 설명되고, 실패는 기술된다”는 의견을 보인다. 성공 사례들은 그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로 각색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성공 스토리’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의 프로그램과 책을 수없이 봐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인전이다.

반면에 ‘실패 스토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실패 사례는 대부분 그때 어떤 상황이 있었고, 어떤 환경 혹은 불가항력적 요인이 그런 실패를 만들어 냈는가와 같은 정황 변수를 나열하는 것으로 대부분 마무리가 된다. 성공이 있는 그대로 기술되고 실패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는 경우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성공은 기술돼야 하며, 실패는 설명돼야 한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귀인(attribution, 歸因)’은 심리학에서 대학 신입생들의 귀에도 익숙한 개념이다. 이는 어떤 일의 원인을 어디에 두는가를 일컫는 말이다. 뜻 자체는 간단명료해 보이지만, 의외로 귀인의 양상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하다. 왜냐하면 발생한 일의 원인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이후의 생각과 행동에 매우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단 심리학자들은 귀인을 내부 귀인과 외부 귀인으로 구분한다. 내부 귀인은 어떤 결과나 행위의 원인을 자기 자신의 노력이나 성향에 두는 것을 말한다. 반면, 외부 귀인은 그 결과나 행위의 원인을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 환경에 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부와 외부 귀인에 있어서 일종의 편향적 경향을 보인다.

성공이나 좋은 결과를 거뒀을 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면, 실패를 하면 그 이유를 외부 요인에 두기 십상이다. 쉽게 말하자면 ‘잘되면 내 덕분, 잘못되면 남 탓’이다. 물론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로 인해 그다음의 말과 행동이 설명과 기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문제다.

성공 뒤에는 성공한 사람, 즉 자신의 노력과 지혜에 관한 스토리를 ‘설명’한다. 그 노력과 지혜를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경우에만 ‘행운’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도 마지못해서. 하지만 실패의 경우에는 완전히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 실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끔 만든 주변의 상황과 정황 요건들이 모조리 기술된다. 물론 이는 ‘변명’을 좀 더 점잖게 표현한 것뿐이다.

 

나는 사석에서 종종 이것이 바로 꼰대와 위인전의 공통점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런 분들이나 이런 책을 만나면 사실 배울 것이 별로 없다. 첫째로, 자기 이야기만 하니 성공에 어떤 시대적 변수와 상황적 요인이 작용했는지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건 둘째다. 실패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원인을 말하지 않으니 어떻게 자기 단련을 해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 교훈을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훌륭한 어른들은 위인전처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로 이야기한다. 자신의 성공에 “그때 운이 좋았지”라고 말을 시작한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 성공을 가능케 했던 주변의 정황 요인들을 말해 주기 시작한다. 반대로 실패에는 “그때 내가 무엇이 문제였느냐면 말이지”라고 운을 뗀다. 이런 분들은 어김없이 대화 끝에 뭔가 쓸모 있는 몇 가지를 남겨 준다.

“모든 세대는 그 이전 세대보다 더 지혜롭고, 다음 세대보다 덜 지혜롭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의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내 경험상 이 말에 동의하는 분들 대부분은 지혜로운 선배들이었다. 그리고 이 말에 격한 반감을 드러낼수록 전형적인 꼰대에 가까웠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늘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신기한 건 이 말을 떠올리는 순간 성공은 기술하고 실패는 설명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김경일은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며 국내의 대표적인 인지심리학자이다. <어쩌다 어른>, <속보이는TV 人사이드>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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